부품사 AVT 뇌물 수사의 핵심 인물, 소환 가까워 오자 압박 느낀 듯
정치권 등 수사 확대 난항 예고 속 검찰 "중간 간부들도 살펴볼 것"
정치권으로 향하던 철도 분야 민관유착, 이른바 ‘철피아’(철도+마피아) 비리 수사가 뜻하지 않은 암초를 만났다. 수사의 정점에 있는 인물 중 하나인 김광재(58) 전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이 4일 숨지면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정부 고위관료나 정치권 인사들의 비리 연루 의혹이 제대로 드러날 것인지도 가늠하기 어려워졌다.
검찰과 경찰에 따르면 김 전 이사장은 이날 새벽 3시30분쯤 서울 광진구 자양동 잠실대교 전망대에서 한강으로 뛰어내렸다. 그는 16㎝ 크기의 수첩 세 쪽에 “그간 도와주신 분들께 은혜도 못 갚고 죄송합니다. 애정을 보여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원망은 않겠습니다. 나로 인해 상처받은 분들은 널리 용서하시기 바랍니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검찰 수사와 관련한 직접적인 언급은 담겨 있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자살의 직접적인 동기가 검찰 수사에 따른 심리적 압박감이었다는 점은 명백해 보인다. 국토해양부 항공정책실장 출신으로 2011년 8월 취임한 김 전 이사장은 지난 1월 임기만료 7개월을 앞두고 사임했다. 4개월 후인 지난 5월 말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김후곤)는 철도시설공단과 김 전 이사장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등 대대적으로 이 사건 수사에 착수했다. 업계에서는 독일에서 레일체결장치 수입ㆍ납품사인 AVT가 김 전 이사장 등 공단 임원들에게 뇌물을 건네고 특혜를 받았다는 소문이 파다했고, 실제로 AVT 측이 감사원 감사관 김모(구속)씨, 권영모(55) 전 새누리당 수석부대변인에게 각각 수천만원씩 건넨 사실이 검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특히 지난 2~3일 이틀간 소환조사를 받은 권 전 부대변인은 검찰에서 “2012~2013년 수 차례에 걸쳐 김 전 이사장에게 AVT로부터 받은 수천만원을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이사장과 AVT의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확보된 셈이다. 현재까지 김 전 이사장은 검찰 조사를 단 한 차례도 받지 않았고, 소환 통보도 이뤄지지 않았지만 조만간 검찰청으로 불려갈 것은 명약관화했다.
검찰은 수사 착수 단계에서 이미 김 전 이사장을 피의자로 입건했다. 그와 관련한 비리 첩보를 확보해 두고 있었으며 중요 수사대상으로 여겼다는 뜻이다. 수사 과정의 전개에 따라선 김 전 이사장은 물론, 관피아 비리에 연루돼 있는 정부 고위관료, 정치권 인사들이 등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김 전 이사장의 자살로 검찰은 수사계획을 수정할 필요가 생겼지만 계속 수사를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애초 김 전 이사장 한 사람만 보고 진행한 개인 비리 수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검찰 주변에서는 철도시설공단 중간 간부들에 대한 조사가 중점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 사정당국 관계자는 “철도 비리는 피라미드의 꼭대기가 아니라 중간 지점에서 광범위하게 발생해 왔으며, 검찰도 현재는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수사팀 관계자는 김 전 이사장에 대해서는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것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며 “조만간 ‘공소권 없음’ 처분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이날 김 전 이사장의 자살에 따라 권 전 부대변인이 심리불안정 상태 등을 겪고 있음을 감안,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그를 체포해 조사한 뒤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장재진기자 blan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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