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총리후보자 사퇴 사태의 와중에 널리 알려진 영국의 여성 여행가 이사벨라 비숍은 조선과 그 이웃들에서 구한말의 조선을 가리켜 “큰 힘에 튕겨 다니는 셔틀콕과 같다”고 했다. 비슷한 시기에 조선을 다녀갔던 영국의 정치인 조지 커즌은 극동의 문제들에서 “블라디보스토크와 나가사키 사이에서 함부로 차는 축구공”이라고 했다. 19세기 말 제국주의 약탈 경쟁에서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한 조선은 이랬다. 종주국인 중국, 청나라가 아시아의 질서를 유지할 힘을 가질 수 있었다면 조선도 이런 대접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청나라의 보호 속에 200년 평화를 구가하며 계속 치세를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편전쟁으로 종이호랑이임이 입증된 청나라도 제국주의 열강에 뜯어 먹히는 신세로 전락해 조선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었다.
만물은 변한다. 1980년대 개혁개방에 나섰던 중국이 암중모색의 도광양회(韜光養晦) 30여년 만에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전면적으로 흔들고 도전하는 양상이다. 군사력만이 아니다. 미국의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대응해 추진하고 있는 RCEP(아시아 역내포괄적동반자협정)와 아시아안보협력기구로 구상중인 CICA(아시아교류ㆍ신뢰구축회의)가 그렇다. 위안화의 국제화 전략도 마찬가지다.
그런 미ㆍ중 경쟁과 충돌의 접점에 한국이 있다. 미국 군사동맹의 아시아 린치핀(Linchpinㆍ핵심)이자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인 한국은 아시아는 물론 세계질서의 현상 변경을 추구하는 중국의 전략적 이해에 대단히 중요한 변수가 됐다.
시진핑 주석이 혈맹인 북한을 제쳐놓고 한국을 단독 방문한 전례 없는 정상외교 행보를 보인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이 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3대 세습과 친중파인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처형 등 북한에 대한 불편한 감정, 박근혜 대통령과의 특별한 친분 등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중국의 아시아 전략에서 무게중심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상징적 장면이다. 그렇다면 오랜 우방인 북한은 지정학적 완충지대로서의 의미 이상으로 여겨지지 않는 셈이다. 북한의 핵 도발이 목에 가시 같은 상황을 빚어내고 있지만 영향력이나 다각도의 수단을 갖고 있음에도 상황악화 방지나 현상유지 외 달리 방도를 취하지 않는 중국의 지금 자세다.
반면 3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이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 및 한반도 광복 70주년 기념행사를 내년에 공동으로 갖자고 제안하고, 4일 서울대 강연에서는 과거 한중에 행한 일본의 군국주의 침탈과 양국의 협력을 강조한 대목은 눈여겨볼 만하다. 일본의 우경화는 한미일 3국 협력의 약한 고리인 동시에 한중의 공동대응 지점이다. 시 주석의 의도가 어디에 있든 간에 3국 공조의 균열과 함께 동아시아의 세력재편을 겨냥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결국은 동아시아의 질서유지 축인 미국의 영향력 약화가 목적이 아니겠는가.
우려할만한 것은 강력한 군사ㆍ경제력을 바탕으로 힘에 의존하는 중국의 현상변경 방식이다.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의 군사적 마찰이나 느닷없는 방공식별구역 설정 등이 대표적인 예다. 남중국해에서는 원유시추를 놓고 베트남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중화의 오랜 패권적 DNA가 새삼 발현되는 듯한 인상이다.
시 주석의 특별한 방한 행보와 한중 밀착은 국제정치 환경의 변화, 중국의 대응 행태와 맞물려 식자층에 불안감을 주는 모습이다. 우리가 미중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예민한 선택의 상황에 몰리는 게 아니냐는 두려움이다.
경제적으로나 군사력으로나 21세기의 한국은 17세기 초 명ㆍ청 사이에서 줄서기에 고민하던 조선도, 배드민턴 공이었던 구한말도 아니다. 힘에 의한 현상변경을 단호히 반대하고, 평화로운 질서 변화에 대한 원칙을 내세우는 당당한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다만 한중 관계나 동아시아 정세 변화에서 능동적 위치에 서기 위해서는 국가적 역량을 계속 키워 나가야 가능한 일이다. 이 정부의 리더십이 여러 내부 갈등을 제대로 조정해 내지 못하고, 덩달아 국가 동력도 점점 떨어지는 듯한 모양새라 걱정이다.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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