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 없이 기본소득'
바티스트 밀롱도 지음ㆍ권효정 옮김
바다출판사ㆍ200쪽ㆍ1만2,800원
장시간 노동, 과잉생산과 소비, 사회 양극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산업혁명 이후 전세계 자본주의 국가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폐해들이다. 이 같은 문제점을 보완하고자 나온 개념이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이란 국가가 국민에게 매달 일정 액수의 돈을 평생 지급하는 제도로 부자든 가난한자든, 일을 하든 안 하든 받을 수 있다. 따라서 기본소득의 개념에는 수혜, 시혜 개념이 들어있지 않다.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누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먹고 살기에 충분한 돈’을 지급하자는 것이 골자다.
한국에는 생소한 이 개념은 사실 1970~80년대부터 서유럽과 미국에서 정치 이슈로 꾸준히 오르내렸다. 특히 지난해 스위스에서는 기본소득 도입을 국민투표에 부치기 위한 서명운동이 성공하며 제도 시행의 초석이 마련되기도 했다.
하지만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좌경화한, 혹은 몽상적인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조건 없이 기본소득’은 이 같은 주장에 대한 논리적 반박과 해법을 함께 제시한 책이다.
저자는 기본소득의 개념을 소개한 1장에서 “월급이 얼마든, 재산이 얼마든, 일정한 돈을 모두에게 공평하게 지급한다면 빈곤을 퇴치하고 사회적인 불평등과 부당함을 줄이며 개인을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기본소득의 적정액수에 대해 “일하지 않고 살아도 될 만큼의 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이 들으면 기겁할 소리다. “기본소득만 믿고 아무도 일하지 않을 것”이라는 반박이 예상된다. 저자는 이 같은 반박을 비웃기라도 하듯 40년 전 미국에서 행해진 실험 결과를 통해 그들의 주장이 틀렸음을 증명한다.
1970년대 초반 미국 의회-당시 집권당은 심지어 공화당이었다-가 나서 수 차례 진행한 실험에 따르면 기본소득을 도입할 경우 전체 노동시간은 평균 7~9%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로버트 홀 스탠퍼드대 경제학 교수는 이러한 노동시간의 감소가 직업 하나로는 생계를 잇기 곤란한 이들이 일이 끝난 후 하던 아르바이트를 줄인 것이거나, 여성이나 학업을 마치지 않은 성인들이 노동시간을 줄인 것으로 풀이했다. 저자는 이를 통해 ‘노동 의욕이 줄 것’이라는 일부의 주장은 실체가 없다고 설명한다.
그의 말처럼 실제 노동 의욕이 줄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전히 당위성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근면한 시민이 힘들게 일해서 낸 세금으로 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놀고먹는 사람을 먹여 살려야 하냐는 반감이 생길 수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오히려 “히키코모리(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사람)들에게도 기본소득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저자는 무임승차자의 모태를 “기독교 수도자들과 은둔 수행자, 그리고 전세계를 돌아다니는 구걸 수행자”로 규정하고 그들 역시 수도원 또는 깊은 산골에서 격리된 채 살아가거나, 하는 일 없이 돌아다니며 타인에게 먹을 것을 의탁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 역시 사회공동체의 일원인 것처럼, 히키코모리 역시 배제해선 안 될 시민이라고 강조한다. 뼈를 깎는 고통으로 수행하는 수도자들이 언제나 생산적인 일을 한 게 아닌 것처럼, 히키코모리 역시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못할 뿐,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방안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의 활동이 언제 어떻게 사회에 긍정적인 결과를 초래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기본소득 시행의 마지막 걸림돌, 재원확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어떨까. 저자는 토빈세ㆍ탄소세ㆍ초고소득자 과세 등 재원확보 방법은 수도 없이 많다고 강조한다. 심지어 이는 이해를 돕기 위한 예시일 뿐 “기본소득 지지자의 수만큼이나 각양각색의 재원확보 방법이 있다”고 주장한다. 조세저항에 대해선 “기본소득 지급을 위해 세금을 더 올릴 경우 대부분 가정에 큰 보상으로 돌아온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독자가 처음 책을 집어 들며 느낄 법한 ‘급진성에 대한 본능적 반감’은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후 사라질 듯 하다. 저자의 탄탄한 논증 덕분이기도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기본소득의 개념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던 기초노령연금과 별반 차이가 없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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