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편지 쓰기 운동 전도사 이근호씨
격려 서신 받은 암 투병 지인이 삶의 의욕 찾는 모습 보고 시작
"영혼을 울리며 전염되는 것 같아"
“18년 동안 함께 살아오면서 감사하단 말 한마디 제대로 못했네요.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남편 드림.”
“우리 ○○이, ○○이, 요즘 공부하느라 힘들지? 오늘만큼은 자전거 타면서 스트레스 왕창 날려버렸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엄마가.”
2일 경기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 북한강 철교쉼터 2층의 ‘손편지 이야기관’에는 비틀스의 ‘아이 윌(I will)’ 이 잔잔하게 흘렀다. 벽면과 천장은 감성적인 노래에 걸맞게 손으로 꾹꾹 눌러쓴 정겨운 손편지들이 빼곡히 들어 차 있다. 환자와 함께 산책을 하다 이곳을 찾았다는 간호사의 사연이 노란색 색종이에 곱게 적혀 있고, 동생과 다툰 뒤 화해의 음료수를 나눠 마시고 빈 깡통을 걸어 놓은 초등학생의 사연도 눈에 띄었다. 편지지에는 쓰는 이의 개성이 한껏 묻어났다. 형형색색의 색종이와 엽서는 기본이고, 종이접시, 상자, 심지어 버려진 플라스틱과 나무조각들도 손편지 이야기관에서는 훌륭한 편지지로 변신했다.
이근호(56) 소장은 “다른 이의 편지를 읽다가 눈물을 흘리는 방문객들이 많다”며 “손편지에는 여전히 감성과 사람 사는 냄새가 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이 ‘손편지 쓰기 운동’을 시작한 것은 2012년부터다. 생업에서 은퇴한 뒤 유방암으로 투병중인 교우에게 작은 희망을 전하는 격려의 손편지를 보냈는데, 그가 눈물까지 흘리며 감동하더니 삶의 의욕을 갖기 시작했다고 했다.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손편지의 위력을 실감한 이 소장은 그때부터 사회 각계각층 인사들에게 손편지를 써 보내기 시작했다. 구속된 모 대기업 CEO에게, 예술의 전당 관계자에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구두 수선사와 야쿠르트 아주머니에게도 편지를 보냈다. 답장이 없기도 했지만 대부분 감동을 담뿍 담은 편지가 돌아왔다. “느리고 더딘 한 장의 손편지가 마치 영혼을 울리며 전염되는 것 같아요.”
수도권 곳곳에서 진행되는 크고 작은 행사장도 찾았다. 세월호 참사 직후인 4월 18일과 19일에는 경기 안산시 임시분향소에 편지를 매달 수 있도록 새끼줄을 매달아 놨더니 금세 ‘색종이 편지’가 빼곡히 들어찼다. 슬픔과 위로의 메시지들은 고스란히 손편지 이야기관으로 옮겨졌다.
이 소장의 목표는 1,000원씩 기부한 국민 성금으로 ‘편지 박물관’을 세우는 것이다. 한 달에 하루를 ‘손편지의 날’로 정해 학생을 대상으로 한 손편지 감성 교육도 계획 중이다. 지역 문화ㆍ예술ㆍ지식인들의 짧은 강연이 곁들여진 교육이 다양한 삶의 지혜를 얻고, 인간성을 회복하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는 최근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부대에 위문편지를 보낼 생각이다. 15일에는 경원선 최북단 종착역인 ‘백마고지 역’의 명예역장으로 취임한다. 이 곳에 우체통을 설치해 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 안보교육을 받는 학생 등 방문객들이 손편지를 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인터넷에 이를 홍보하면 금방 네티즌에게 퍼져나갈 법 한데 이 소장은 손편지 쓰기 운동에 관한 한 철저히 발품과 입소문, 인쇄매체 등 ‘오프라인 홍보’만 고집한다. “속도와 경쟁만을 강조하다 보니 SNS, 이메일이 사람 위에 군림하잖아요. 민들레가 홀씨를 퍼트리듯, 더디지만 꾸준히 감성을 전하고 싶습니다.”
글ㆍ사진=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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