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시기 1년 전쯤 소설가 최인호 선생님은 시골의 어느 허름한 식당에서 내게 대략 이런 요지의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다시 태어난다면 사람들의 주목과 세속적인 영예에 사로잡히는 삶이 아닌, 시골 허름한 식당에서 전을 부치고 막걸리나 팔면서 살고 싶다.” 명예와 인기와 부귀를 충분히 누린 대작가의 매우 극적인, 하지만 짐작 못할 것도 없는 소회가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선생님은 그토록 화려한 삶을 살았기에 더욱 두드러져 보일, 당신이 곧 피하지 못하고 맞게 될 죽음의 적막이 몹시 두려웠으리라. 그 적막을 편안히 맞이할 수 있는 소소한 삶을 동경했던 것이리라. 선생님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되는 소인배지만 나도 가끔은 그런 비슷한 심사에 사로잡힌다. 서울을 떠나, 어디 작은 소읍의 염색공장이나 비료공장 같은 데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지어진 기숙건물 한 켠에 짐을 풀고 하루 열한 시간의 노동을 수행하는, 드러나지 않고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삶. 실제로 그런 노동을 감내하지 않으면 삶이 영위가 되지 않는 분들에겐 결례가 되는 말인지는 모르지만, 단순함이, 고단함을 수반하는 육체의 노동이, 지식과 관계 맺지 않음이 오염된 삶을 정화시킬 수 있다는 어떤 환상과 믿음 같은 것이 내게는 있다. 지식노동이니 정신노동이니 하는 말들, 가끔 참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든다. 편견인진 모르지만 아무래도 정신이나 지식은 육체보다는 정직하지 않을 거라는 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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