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제기 기자의 Cine Mania]
5월 말 개봉 '끝까지 간다', 한 달 만에 관객 300만명 돌파
홍콩 두치펑 감독의 연출 이력은 좀 유별나다. 1980~1990년대 ‘우견아랑’(1989)과 ‘지존무상2’(1991) 등 오락성에 함몰된 영화를 주로 만들었다. 묵직한 주제보다 최루성 이야기에 화끈한 액션을 더했다. 유치하다는 평가도 따랐다. 국내 관객들의 사랑도 꽤 받은 이 상업영화 감독은 2000년대 들어 유명 영화제의 단골 손님이 됐다. 수년간 여러 작품을 만들며 쌓은 세공술로 액션의 장인이 됐다. 영화가 품은 주제도 덩달아 깊어졌다. 홍콩 암흑가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 다툼을 옮긴 ‘흑사회’는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어두운 메타포로 읽힌다. ‘매드 디텍티브’(2007)와 ‘탈명금’(2011)은 현대사회에 냉소를 보내는 수작이다.
두치펑 감독은 가장 존경하는 한국 영화인으로 이창동 감독을 종종 꼽는다. 자신은 “수 십 편의 영화를 만들고서야 이른 경지에 이 감독은 단 몇 편만으로 다다랐다”는 이유에서다. 홍콩을 대표하는 세계적 대가가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두치펑은 행운아다. 영화 한 두 편만 만들고 재능을 제대로 피우기도 전 은퇴를 강요당하는 감독은 홍콩이든 충무로든 할리우드든 허다하다.
감독의 메가폰은 특출한 재능보다 흥행에 의해 곧잘 보장된다. 자본의 충무로 장악력이 높아지면서 데뷔작이 사실상 은퇴작이 되는 국내 감독이 갈수록 늘고 있다. ‘끝까지 간다’의 김성훈 감독도 데뷔작과 함께 잊힐뻔했다.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2006)으로 ‘입봉’했으나 흥행(59만3,277명)도, 평가도 처참했다. 명칭만 감독인 무직자로 살 위기에 처했다. 그는 ‘끝까지 간다’를 제외하고 “6년 동안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고시 공부하듯 집중해서 만든” 진심이 통한 것일까. ‘끝까지 간다’는 5월 29일 개봉해 지난달 28일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5월 열린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받기도 했다. 흥행과 함께 호평을 얻었다. 김 감독은 충무로에선 아주 드물게 데뷔작이 실패한 뒤 회생한 감독이 됐다.
‘끝까지 간다’의 성공은 단지 김 감독에게만 기쁜 일이 아니다. 타성에 젖고 나쁜 관행에 빠진 충무로에도 좋은 본보기다. 최근 대기업 계열 투자배급사들은 흥행 성적이 좋았거나 대중에게 익숙한 스타 감독을 ‘포섭’하느라 바쁘다. 스타 감독의 지명도를 마케팅에 활용하면 흥행 성적도 더 쉽게 올릴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배우든 감독이든 스타마케팅은 흥행의 주요 요소이나 최근 충무로의 스타 감독에 대한 편애는 도를 넘었다. 시나리오의 완성도보다 감독의 이름 값에만 너무 기대는 경향이 강하다. 배우와 감독 등 진용은 화려하나 정작 볼 맛은 떨어지는 한국 영화가 늘고 있다.
‘끝까지 간다’의 길고 가느다란 흥행 유형도 모범적이다. 최근 충무로는 ‘짧고 굵은’ 흥행이 대세다. 영화의 만듦새보다 마케팅이나 스타 파워 등이 흥행을 쉬 결정한다. ‘끝까지 간다’는 꼼꼼한 완성도로 입 소문을 만들어내며 장기 흥행을 연출했다. 제목처럼 ‘끝까지 가는 모습’을 비치는 ‘끝까지 간다’에 갈채를 보내고 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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