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말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는 미국과 화해의 조건을 따지는 자리에서 일본이 다시 군국주의의 길을 걷고 있다고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에 대해 헨리 키신저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보좌관이 내세운 논리가 바로 ‘병뚜껑(bottleneck)’론이다. 주일 및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해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억제하는 안정제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40여년이 흐른 지금, 병뚜껑 논리는 완전히 붕괴됐고 일본은 오늘 군사적으로 ‘병 밖’으로 나왔다. 일본 각의가 1일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인정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된 동북아 안보질서의 핵심 축을 뒤흔드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일체의 대외적 무력행사를 금지한 평화헌법(9조)은 전후 일본이 군국주의화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스스로 채운 ‘족쇄’이자 동시에 자산이었다. 그 기반 위에서 일본은 ‘평화국가’라는 국가정체성을 앞세워 과거 침략했던 아시아 제국과 관계를 정상화하고 경제 강국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전쟁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에 기지를 제공해 안보를 보장 받던 ‘기지국가’에서 자력으로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되돌아왔다.
아베 정권이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명분으로 표방하는 ‘미일동맹 강화’에는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를 천명한 미국의 의중과 중국에 대한 일본 보수 세력의 우려가 녹아있다. 미국은 ‘부상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동맹인 일본의 군사력 확대를 요구해왔고, 여기에 아베 정권이 ‘대등한 미일관계’라는 미명 하에 적극 ‘편승’한 셈이다. 일본 보수 세력은 일본이 중국과 군사적으로 충돌할 경우 미국이 집단적 자위권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우려해왔다. 이런 점을 불식하기 위해 집단적 자위권을 적극 행사해 미국을 붙잡아둬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일본의 군사적 개입은 중국 등 주변국을 자극해 오히려 일본의 안보를 취약하게 만드는 딜레마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사례로 특히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을 강조하며 미일 미사일방어(MD) 체제를 강화할 태세다. 이는 중국의 탄도미사일에 대한 방어능력 확대에 다름 아니다. 연내 개정될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에는 중국 견제를 위한 일본의 확대된 군사적 역할이 다채롭게 열거될 것이다. 당연한 귀결로서 이는 해양진출과 함께 접근저지ㆍ영역거부(A2/AD)를 추구하는 중국의 전략과 정면으로 충돌할 것이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한국 안보와 한미일 3각 관계에도 미묘한 파장을 가져올 수 있다. 일본은 1999년 주변사태법을 제정해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가 미군에 무기와 탄약을 운송하는 ‘후방지원’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면 후방지원만이 아니라 한반도 사태에 직접 개입할 여지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는 우리 주권과 관련된 지역에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이 행사될 경우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한미일 무기체계의 상호운용성, 미국이 한국군에 전시작전권을 행사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좀더 확고한 태도와 대응이 필요하다.
이동준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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