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 넘어선 적극적 민원 응대로 보이스피싱 피해 막아
지난 3월 20일 오후 3시 경북 경주시 화랑로 소재 대구지검 경주지청 1층 현관. 한 할아버지가 어쩔 줄 몰라하며 청사 내 은행 앞을 서성였다. 평소 검찰청 관용차량 운전 업무를 하면서 틈틈이 민원안내 근무를 서는 정삼식(53ㆍ사진) 실무관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무슨 일로 오셨냐”고 묻자 이모(90) 할아버지는 “서울중앙지검의 곽○○ 검사가 전화를 걸어와 ‘당신의 은행 계좌가 범죄에 이용됐으니 돈을 모두 인출해서 내가 지정하는 계좌로 입금하라’고 해서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미 3,000만원을 인출해 갖고 있었다. 시키는 대로 순순히 큰 돈을 보내기 직전이었다.
정 실무관은 “잠시만 기다려 보라”며 이씨를 만류했다. 대화 중에도 이씨의 휴대폰은 계속 울려댔다. 070으로 시작하는 인터넷 전화였다. 정 실무관이 직접 전화기를 건네받아 통화를 했다. 수화기 너머 태연스럽게 ‘곽○○ 검사’라며 “빨리 입금해야 한다”는 재촉이 쏟아졌다.
정 실무관은 즉각 검찰 내부통신망인 이프로스를 통해 ‘곽○○ 검사’를 조회했다. 전국 어느 검찰청에도 그런 이름의 검사는 없었다. 이씨 휴대폰에 찍힌 번호로 전화를 걸자 인근의 한 식당이 나왔다. 의심할 여지 없는 보이스피싱이었다. 정 실무관은 할아버지께 “이런 전화는 절대로 믿으면 안 된다”고 말씀드린 뒤, 경주경찰서로 모셔가 피해 진술을 하도록 했다.
정 실무관은 30일 “할아버지가 검사라는 인물이 범죄 이용 운운하니 그대로 믿고, 검찰청 은행에서 입금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며 “검찰 직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말을 아꼈다.
대검 관계자는 “자신의 본래 직무범위를 넘어 적극적으로 민원에 응대해 민원인의 피해를 방지했다는 점에서 정 실무관은 모범 공무원의 표본”이라며 “전국 검찰청에서 교육 사례로 활용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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