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小史]
제143회 - 7월 첫째 주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지...”
어두운 화면 속에서 돈 코를레오네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낮게 읇조린다. 마리오 푸조 원작,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 ‘대부’에서 비대한 덩치의 마피아 두목 역을 맡아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였던 할리우드 스타 ‘말런 브랜도’가 2004년 7월 1일 폐질환 투병 끝에 8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강력한 캐릭터의 대명사로 20세기 최고배우로 꼽히던 그의 죽음에 전 세계 영화 팬들은 앞다퉈 깊은 애도의 뜻을 표했다.
1924년 미국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에서 세일즈맨 아버지와 무명 여배우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브랜도는 19세 때 고등학교에서 퇴학 당한 후 연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50년, 신체가 마비된 군인들의 이야기를 그린 ‘더 멘(The Men)’을 통해연극에서 영화로 눈을 돌린 그는, 그때까지 어떤 배우들에게도 볼 수 없었던 자극적이고 선 굵은 연기를 소화해내며 황금시대를 열었다. 첫 아카데미 후보의 영광을 안겨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야수적인 자동차 매니아 코왈스키 역을 맡아 반항과 불복종의 아이콘으로 탄생했으며‘혁명아 사파타’ ‘줄리어스 시저’ ‘위험한 질주’를 통해 본인의 색채를 뚜렷이 각인시켰다. 그리고 처음으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워터프론트’까지, 이들 모두가 50년대 초반의 작품들이다.
60년대 들어 잠시 슬럼프에 빠졌던 그의 진가가 확인된 작품은 1972년에 만들어진 영화 ‘대부’였다. 실존인물이었던 마피아 두목 ‘코사 노스트라’의 조직화된 범죄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에서, 말런 브랜도는 막내아들 역의 알 파치노와 변호사 역의 로버트 듀발 등과 호흡을 맞추며 범죄영화의 신기원을 개척해냈다.
대부의 흥행에 힘입어 당시 파산위기에 있던 제작사 파라마운트는 기사회생했으며 10년 후 스필버그 감독의 ‘ET’가 개봉할 때까지 흥행기록은 깨지지 않았다.
73년, 대부는 아카데미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어 남우주연상과 작품상, 각색상 등 3개의 오스카를 수상했지만 브랜도는 시상식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인디언 복장의 여성을 보내 미국의 원주민 정책에 항의하는 내용의 연설문을 읽게 해 행사장을 술렁이게 만든 일화도 유명하다.
화려했던 배우생활과 달리 말년의 그의 삶은 행복하지 못했다. 아들이 살인혐의로 법정에 섰고 그 사건의 여파로 딸까지 자살에 이르게 심한 심적 고통을 겪었다.
브랜도는 사후에도 영화에 출연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브라이언 싱어감독은 2006년 개봉영화 ‘슈퍼맨 리턴즈’에서, 그의 미공개 필름들을 편집해 어린 슈퍼맨의 아버지로 등장시킴으로서 팬들에게 추억의 향수를 선사했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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