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여수애양원 등 거주민들 "평범한 이웃으로 느낄 수 있게…"
사진작가 박성태씨가 오랜 설득 끝에 일상의 모습들 전시회 허락받아
18일부터 진남문예회관서 열려
며칠 전 여수시내 한 병원에서 한센인이었던 90세 할머니가 홀로 세상을 떠났다. 일흔을 넘긴 아들은 찾는 이 없는 적막한 빈소를 지키며 내내 통곡을 했다.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한센인 부모와 격리돼 살아야만 했던 아들이다.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못하고 보낸 회한의 세월이었다. 1992년 세계나학회 서울총회에서 한센병 종료를 선언했지만 전국의 상당수 한센인 자녀들은 지금도 부모의 존재를 숨긴 채 살아가고 있다. 한센인에 대한 뿌리 깊은 사회적 편견과 왜곡된 인식 때문이다.
혈연마저 꽁꽁 숨기고 은둔해왔던 한센인이 특별한 사진전을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전남 여수 진남문예회관에서 7월 18일부터 8월 3일까지 열릴 ‘우리안의 한센인-100년만의 외출’ 이란 주제의 전시회다. 사진작가 박성태(47)씨가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의 여수애양원 평안의집과 도성마을에 거주하는 한센인 150여명의 개인 일상을 담은 사진 100여점이 전시된다.
전시회는 100년이 넘은 역사를 지닌 여수애양원의 한센인 일상을 처음 사회에 공개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진전의 주인공들도 설렘을 안고 전시를 고대하고 있다. 도성마을의 한 한센인은 “100년 동안 외면 받아온 우리가 작품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전시장에 얼굴이 내걸린다는 것을 상상이나 했겠느냐”며 “전시장 가는 날이 기대된다”고 했다.
작가의 시선은 일하고, 새벽 예배를 드리고, 개밥을 주고, 화장을 하는 한센인들의 평범한 일상을 주시했다. 소록도에서 여읜 남편의 영정 사진만 품에 안고 사는 신모씨, 명문대를 졸업했지만 한센병을 앓아 이곳으로 격리돼온 김모씨, 목포에서 한 주먹 했던 용팔이 어르신, 매일같이 시를 즐겨 쓰는 이모씨, 손발이 없지만 기억력이 가장 좋아 인기 만점인 이모씨 등이 작가를 받아 준 한센인마을 사람들이다.
그의 한센인에 대한 1년간의 밀착 촬영은 고난과 투쟁의 과정이었다. 사회로부터 문이 닫힌 그들이 쉽게 마음의 문을 열어줄 리는 만무했다. 한센인들은 자신들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것에 얼굴에 기관총을 들이대는 것만큼이나 거부감이 강했다. 일부 한센인은 “우리를 이용해 돈벌이하려는 것 아니냐”며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이럴 때마다 밤낮으로 마을을 찾아 “한센인도 이웃에게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며 설득했다. 그는 한센인과 함께 기도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같이 눈물을 훔쳤다. 때론 아들을 데리고 가 품에 안겨 드리고 아이의 재롱을 함께 즐기며 부대꼈다.
그렇게 시작된 촬영이었지만 또 전시가 결정되기까지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촬영까지는 허락했지만 전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박 작가는 전시할 작품을 미리 보고 결정하자고 눈물로 호소했고 마을 교회에서 지난 달 사진이 공개된 뒤 극적으로 전시가 결정됐다.
도성마을의 또 다른 한센인은 “찌그러진 얼굴 보여주는 것이 뭐가 좋았겠는가. 하지만 박 작가가 눈물을 흘리며 열심을 다해 설득하는데 안넘어갈 수가 없었다”며 “박 작가처럼 우릴 평범한 이웃으로 느끼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작가는 “한센인은 우리의 이웃이다. 이번 전시가 한센인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고 시선을 바꾸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현재 진행 중인 한센인 단종ㆍ낙태 등에 대한 배상과 한센인 2,3세대들의 인권·복지에도 사회적 관심이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여수=하태민기자 ham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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