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제철이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으로 향하는 길이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자율협약의 키를 쥐고 있는 신용보증기금(신보)이 채권단에 우선변제권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동부그룹에서 추후 빚을 갚을 경우 신보 채권부터 가장 먼저 갚아달라는 의미라, 채권은행들이 난색을 표하고 있다. 비록 채권규모가 가장 큰 산업은행이 자율협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지만 자율협약은 채권은행 모두의 동의가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개별 채권은행들 가운데 일부가 이에 반대할 경우 자칫 동부제철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형태로 구조조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세는 자율협약 체결이지만 은행들의 이견이 껄끄러운 상황이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날 오전 산업은행 등 11개 동부제철 채권단은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자율협약 관련 회의를 진행했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자율협약을 전제로 실무자들에게 경과보고를 했고, 동부제철로부터 자율협약 신청이 들어오면 동의여부를 묻기로 했다. 자율협약 전제는 다음달 7일 만기가 도래하는 동부제철 회사채 700억원을 차환을 통해 막는 것. 산은 관계자는 “워크아웃보다는 자율협약을 전제로 회의가 진행됐다”며 “신보의 차환 발행 동의가 필수”라고 설명했다.
신보는 이날 차환발행 조건으로 동부 측의 새로운 자구안 대신 우선변제권을 산은에 제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동부제철 회사채를 막기 위해 차환을 발행할 경우 신보의 부담 몫인 240억원을 우선 상환토록 한다는 조건을 제시한 것. 신보 관계자는 “산은에서 조건을 수용할 경우 차환 발행에 동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신보의 요구에 다른 채권금융기관들은 “상식에 어긋나는 발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 채권단 관계자는 “향후 동부제철 채권을 변제할 때 각 기관들의 보유채권 비율에 맞춰 나누는 게 원칙”이라며 “이를 산은이 받아들일 경우 자율협약에 참여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산은은 차환을 발행하지 않더라도 자율협약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다른 채권은행들은 “추가지원은 어렵다”며 이 마저 부정적으로 응수했다.
한편, 산은은 동부CNI에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차환과 관련, “지원은 없다”고 공식 통보한 것으로 확인돼 동부그룹은 자금 조달에 난항이 예상된다. 동부CNI는 내달 5일 200억원, 12일 300억원의 회사채 만기를 각각 맞는데 이중 100억원을 산은이 보관하고 있다. 동부그룹 비금융 계열사들의 단기성 차입액(지난해말 기준)이 전년대비 8,000억원이 늘어난 4조39억원에 달해 동부 측 유동성 위기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날 나이스신용평가는 “동부그룹 전반의 대외 신인도 저하와 자금 재조달 위험 등으로 주요 계열사 전반의 유동성 위험이 우려된다”며 동부제철 회사채 신용등급을 ‘BBB-’에서 ‘BB’로 두 단계 하향 조정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