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말썽꾸러기였다. 수업시간에 떠들고 졸다가 교사에게 하키채로, 당구채로 맞은 횟수를 셀 수도 없다. 그렇지만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친 경우는 별로 없다. ‘맞은 게 뭐 대수냐’하면서 금세 육체의 고통을 잊었다.
기자가 졸업한 지 11년 뒤에도 교육 현장은 전혀 바뀐 것이 없었다. 서울 강서구의 한 고교에서 근육이 파열될 정도로 심한 얼차려가 있었던 사실이 보도(본보 25일자 12면)된 후 “우리 아이도 심한 체벌을 당했다” “체벌을 가한 교사를 엄하게 징계해달라”는 제보가 잇따랐다. 변한 것이 전혀 없는 교육현장의 모습에 놀라울 따름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문제아가 맞을 짓을 해서 체벌을 받았다”는 어느 학생의 메일이었다. 교사가 학생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때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체벌은 효율적인 훈육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것은 개인적 경험으로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교육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증명됐다. 1940~2002년 체벌 연구 88개를 분석한 엘리자베스 게르쇼프 미국 콜롬비아대 교수의 논문은 “체벌이 단기적으로 그 행동을 하지 않게 할 뿐 장기적으로 ‘걸리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만 심어준다”는 결론에 이른다.
체벌은 학생들에게 폭력을 가르친다는 부작용도 있다. 체벌을 당한 학생에게 좌절과 분노를 심어줘 정신적 부작용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체벌을 목격하기만 해도 폭력 사용을 정당화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은경 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의 ‘체벌의 실태와 영향에 대한 연구(1999)’는 “폭력적으로 훈육된 아이들은 폭력 사용을 정당화하는 인성 및 태도를 확립한다. 체벌을 당한 학생들은 ‘저 자식이 맞을 짓을 했으니까’ ‘정신을 못 차리니까 따끔한 맛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며 다른 학생들에게 폭력을 가한다”고 지적했다.
학업 열의도 약하고, 불손했던 기자의 태도는 한 은사 덕분에 바뀌었다. 그 교사는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를 묻고 “왜 문제가 되는지”를 설명했다. 이 지루한 대화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교사 학부모 교육당국은 ‘훈육을 위해서’라는 목적이 폭력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폭력에 대한 방조와 대물림을 끊을 수 있다. 폭력이 난무하는 곳이 교육현장일 리 없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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