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를 잘 모른다. 월드컵 시즌이 되면 몇 경기 챙겨보지만, 내 눈이 볼 수 있는 건 극히 한정적이다. 그림 같은 패스라느니 뛰어난 골 감각이라느니 해설자가 찬탄을 해도 그게 뭐 그리 대단하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슛 하면 쉽게 들어갈 것 같고 툭 건네면 동료에게 전달될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러다 엊그제 아주 단순한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하이앵글의 카메라가 전송하는 영상을 통해 전체의 움직임을 조망하고 있지만, 선수들은 각자의 시야만을 확보할 수 있다는 거. ‘플랫랜드’라는 판타지 소설이 떠올랐다. 우리가 사는 삼차원 공간과 달리 플랫랜드는 평평한 이차원 세상이다. 앞뒤와 양옆은 있지만 위아래가 없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에게는 모든 사물이 직선으로 보인다. 카드 한 장을 내려다보면 사각형 안의 패를 읽을 수 있지만, 수평으로 눈높이에 두면 가는 선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쩌면 저 선수들도 일종의 플랫랜드에 있는 게 아닐까. 그들은 평평한 그라운드를 뛰고, 나는 TV를 통해 그 그라운드를 내려다본다. 내려다보니 잘 보이지만, 잘 보인다고 멋진 플레이를 즐길 수 있는 건 아니다. 제대로 즐기려면 그라운드에 눈높이를 둘 수 있어야 한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만만해 보이는 패스가, 실제로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어디 축구만의 문제일까. 섬세한 감식안, 사려 깊은 판단은 늘 이 눈높이에서 시작된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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