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고 故 임현진군 부모
등교하는 73명 속에 없는 게 믿기지 않아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 지나가는 또래 보고 또 눈물
치우다 그리움 쌓일까봐 유품 정리 아직도 못해
어머니는 돌아온 아이들을 부둥켜 안아주고 싶었다. 학교 교문 앞으로 생존학생들을 마중나갔다. 하지만 “엄마 아빠,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아이들이 인사했을 때, 뒷걸음질쳤다. “아들아, 너는 여기 왜 없는 거니…. 엄마는 아직도 믿겨지질 않는단다.”
안산 단원고 생존학생들이 25일 학교 등교를 시작하면서 피붙이를 가슴에 묻은 희생학생 부모들은 또 다시 아픔을 겪고 있다. 26일 밤 서울 신림동 한 음식점에서 만난 단원고 2학년 8반 고 임현진(17)군의 부모는 전날 등교하는 생존학생들을 바라보며 어쩔 수 없는 눈물을 삼켰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너희라도 살아와서 고맙다”고 말하면서도, 아이들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기쁜 일이라면서도, 잠을 이룰 수는 없었다.
임군의 부모는 참사 21일 만인 지난달 6일 밤 주검이 된 아들을 품었다. 사흘 뒤 아들 생일을 수원 화장장에서 보냈다.
어머니 이미숙(43)씨는 전남 진도 팽목항 신원확인소에서 겪은 충격을 담담하게 끄집어냈다. “엄마들은 시신 얼굴을 못 보게 하더라. 하지만 꼭 보고 싶던 아들 보겠다고 애써 마음 추스르고 난 뒤 얼굴을 보곤 그대로 쓰러졌다.” 그는 지난 3일 안산 하늘공원에서 아들의 49재를 치르다가 피를 토했다. 병원에선 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아들 예쁘게 보내주는 날인데, 왜 그리 속이 안 좋던지….”
자식 잃은 슬픔을 쉬이 잊을 부모야 없겠지만 세월호 참사 희생가족들은 사고의 진상과 해경의 늑장 구조를 납득하지 못하는 점에서 괴로움이 크다. 이씨는 살아있는 아들을 구조요원들이 외면했던 순간을 떠올릴 때 가슴이 찢어진다고 했다. 그는 스마트폰으로 사고 당일 구조장면 사진을 보여줬다. 해경이 침몰하는 세월호 4층 창문에 몰려 구조를 기다리던 7, 8반 아이들이 있는 방을 보고 손으로 가리켜 놓고도 이내 고개를 돌리던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해경이) 선원들을 구할 때 아이들을 보고도 외면했다는 거죠.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소주잔을 한 입에 털어 넣은 아버지 임희민(44)씨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서명을 받다가 2주 전쯤 한 장병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춘천 모 부대 군인이 ‘부대에서 서명하지 말랬지만 서명하겠습니다’라고 합디다. 가슴 찡하게 고마우면서도 (군에) 분노했습니다.” 그는 아직 아들 유품 정리를 못 했다. 치우다가 그리움만 쌓일 듯해 아들 방에 차마 들어갈 수가 없다고 했다.
부부는 얼마 전 아들의 스마트폰을 복구하려다 복구업체로부터 내장 메모리칩 부식이 심해 복원될 수 없다는 통보를 듣고 또 낙담했다. 이씨는 “아들의 마지막 순간이나마 보고 싶어 한 달 넘게 기다렸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임군의 부모는 아직 아들 사진을 스마트폰 배경화면과 지갑에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아버지의 차량 운전대 옆에는 아들과 친구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 놓여있다.
임씨는 씩씩했던 아들 생각이 떠올랐다. “녀석이 실내디자인에 재능이 있었어요. 집안 인테리어도 그 애가 절반쯤 다 바꿨어요. 새집 같았지.” 임군은 건국대 실내디자인학과에 들어가길 희망했다고 한다. 밤이 깊어 임군의 부모는 네온사인이 요란한 도로변에서 기자와 헤어지면서 슬픈 미소를 지었다. “지나가는 저 또래들을 보니 또 아들 생각이 나는구먼.”
손현성기자 hshs@hk.co.kr
신지후기자 h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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