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93억달러 기록 환율은 연저점 다시 경신 하락 압박 더욱 거세질 듯
내수 부진으로 수입 줄어 불황형 흑자 불안감 증폭
경상수지가 27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외환위기 이후 최장 기록. 경상 흑자는 우리나라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에서는 금융위기의 방어막이지만, 과도한 흑자 행진은 슬슬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매달 국내로 쏟아져 들어오는 달러는 원화 강세를 부추기며 이제 ‘1달러=1,000원’ 벽마저 허물 기세. 원ㆍ달러 환율은 다시 연저점을 갈아치우며 5년11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27일 발표한 ‘2014년 5월 국제수지’에 따르면 지난 달 경상수지는 93억달러 흑자로 잠정 집계됐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경상수지는 2012년 3월 이후 27개월 째 흑자를 이어가게 됐다. 외환위기 극복 시기인 1997년 11월부터 1999년 12월까지 26개월을 이어온 흑자 행진 이후 15년 만의 최장기록이다. 더불어 현 국제수지 통계 방식으로 경상수지를 계산한 1980년 이후 역대 두 번째로 긴 흑자 행진이다.
지난 달 경상수지 흑자폭은 작년 같은 달(97억5,200만달러)에 비해 4.6%가 줄었지만 올 4월(71억2,000만달러)보다는 30.6%나 급증한 수치다. 올 들어 가장 큰 폭의 흑자다. 이에 따라 올 들어 1~5월 누적 경상 흑자는 315억달러를 기록하며 한은이 전망한 올해 경상 흑자(약 680억달러)의 46%를 넘어섰다. 이 추세라면 연간 흑자는 700억달러를 훌쩍 넘어설 공산이 크다. 더구나 미국 등 선진국 경제 회복이 흑자 레이스의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 한은 관계자는 “보통 하반기의 경상수지 실적이 상반기보다 좋아지는 계절적 요인이 있는 만큼 최소한 올 하반기까지 흑자 행렬은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한은이 내달 성장률 수정 발표에서 올해 경상수지 흑자 예상치를 늘려 잡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는다.
하지만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건 과도한 경상 흑자가 환율 하락을 압박하고 있다는 점. 대규모 경상 흑자 소식이 전해진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2.8원 내린 1,013.14원에 거래를 마쳤다.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7월31일(1,012.1원) 이후 가장 낮은 수치. 경상수지 자체가 후행지표임에도 불구하고 향후 달러 유입이 지속될 거라는 전망이 환율 하락을 부추겼다. 더구나 경상 흑자 폭이 커지면 커질수록 국제수지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는 선진국의 압력이 거세질 전망이다. 주요 20개국(G20)이 권고하는 경상 흑자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4% 이내이지만, 우리나라는 5~6%를 넘나들고 있다. 우리 수출기업들이 저환율에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겼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상당한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흑자의 내용도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 지난 달 경상수지 중 상품의 수출입에 따른 상품수지 흑자는 4월(106억5,000만달러)보다 줄어든 93억5,000만달러. 특히 수출(526억1,000만달러)이 전달보다 7.2% 감소했다. “5월 영업일수가 부족해서 생긴 일시적 상황일 뿐”이라는 게 한은의 설명이지만, 추세적으로 볼 때 수출이 늘어나는 것보다 수입이 적게 증가하면서 생기는 ‘불황형 흑자’의 성격이 없지 않다. 내수 부진이 수입 감소로 이어지는 것이 흑자폭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오승훈 대신증권 시장전략팀장은 “경상 흑자 행진이 계속 이어진다면 자동차 등 해외업체들과 경쟁이 치열한 분야의 기업들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다만 7월쯤 원화 강세의 정점을 지날 것으로 보여 어려움이 지속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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