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밑바닥까지 내려간 작가 그가 말하는 문학의 근원적 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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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밑바닥까지 내려간 작가 그가 말하는 문학의 근원적 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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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7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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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식 살인의 쇠퇴/ 조지 오웰 지음ㆍ박경서 옮김 은행나무 발행ㆍ396쪽ㆍ1만4,000원

공산주의·자본주의에 투쟁해 온 오웰의 대표 논픽션 작품 초안과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산문 담아

조지 오웰은 탁월한 정치소설가일 뿐 아니라 위대한 산문가였다. 1938년 폐결핵으로 요양 중이던 모로코에서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조지 오웰(1903~1950)은 최근 몇 년 새 두드러지게 독서가들의 애호를 받고 있는 작가다. 전체주의를 비판한 ‘동물 농장’과 ‘1984년’의 소설가로서가 아니라 르포르타주, 평론, 서평, 기사, 칼럼 등 다양한 장르를 종횡무진했던 산문가로서다. ‘나는 왜 쓰는가’ ‘위건 부두로 가는 길’ 등의 책을 통해 소개된 산문들 덕분에 오웰은 오늘날 우리 시대를 반세기 전 온 몸으로 미리 겪었던 통찰과 혜안의 작가로 즐겨 호명되고 있다.

‘영국식 살인의 쇠퇴’는 오웰 전공자인 번역가 박경서씨가 오웰의 대표적 논픽션 작품들의 초안과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산문들을 골라 초역한 책이다. 인도에서 태어나 버마의 인도제국 경찰로 성년기의 첫 5년을 보낸 오웰은 “부정한 돈벌이”에 대한 속죄의 일환으로 영국에 돌아오자마자 하층민들과 어울리며 떠돌이 생활을 했다. 이튼 스쿨 출신의 중산층이었음에도 “스스로 밑바닥까지 내려가 억압받는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그들 중 한 사람이 되어 압제에 대항하여 그들 편에 서기를 원했”던 것이다. 스스로를 철저히 노동계급으로 인식하며 죽음 직전의 가난으로까지 갔는데 이 체험은 극도의 사실적 묘사로 그의 논픽션에 반영돼 있다. 책에는 영국 북부 탄광 노동자들의 처참한 삶을 그려낸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의 취재 일기와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던 경험을 담은 ‘카탈루냐 찬가’의 초안, 부랑자들의 굴욕적이고도 절망적인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스케치가 실려 있다.

중산계급에서 노동계급으로 자발적으로 전환한 것은 작가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문학의 근원적 물음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계기였다.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어느 정도까지는 얻을 수 있다고 예상하면서 살아가는 반면 노동계급의 사람들은 항상 스스로를 뭔가 신비스러운 권위의 노예로 생각”하는 것을 목도하고 “파시즘을 지지하고 있거나 지지한 적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잃을 게 있는 사람들, 또는 계급사회를 염원하고 인류의 자유롭고 평등한 세계 지향을 두려워하는 자들”임을 간파한다. 행복이라는 것은 “노고든 고통이든 무엇인가로부터 벗어나는 형태를 제외하고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므로, 영원하다면 그것은 행복이 아니다. 요컨대, 유토피아는 불가능하다. 사회주의의 진정한 목표는 행복이 아니라 인류애이며, 행복은 그 부산물일 뿐이다.

오웰은 인간에 대한 억압이면 무엇이든 맞서온, 제국주의와 파시즘,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모두에 투쟁해온 지식인이었다. 전쟁과 가난이라는 현실의 핵심을 향해 거침없이 돌진했던 이 체험형 작가에게 무엇이 두려웠을까. “나는 이런 것들이 두렵다. 왜냐하면 객관적 진실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가고 있다는 느낌이 종종 들기 때문이다. …기록된 역사 대부분이 어떤 식으로든 거짓이라고 말하는 것이 유행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역사가 대체로 부정확하고 편파적이라는 것을 기꺼이 믿고 있다. 그런데 우리 시대에 특별한 점은 역사가 진실하게 쓰일 수 있다는 개념 자체를 포기하는 데 있다.”

이것은 “집권 세력이 미래뿐 아니라 과거도 통제하는 악몽 같은 세계”다. 한계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추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어느 정도라도 사실을 밝혀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작가의 직설적 유머와 소재의 친숙함 때문에 웃펐던(웃지만 슬펐던) 대목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는 게 좋겠다. 제목하여 ‘어느 서평가의 고백’. 연간 100권 이상의 서평을 썼던 생계형 저작 노동자였던 오웰은 서평을 쓰는 대부분의 책에 “아니, 이것도 책이라고!”라는 코멘트를 자기도 모르게 내뱉는다. 하지만 막상 기사를 쓰기 시작하면 “‘놓쳐서는 안 될 책’이니, ‘페이지마다 기억에 남을 어떤 것이 들어 있는 책’이니 하는 식의 진부하고 상투적인 표현들이 자석에 따라 움직이는 쇳가루처럼 제자리에 올라탄다.”

오웰에 따르면, 서평이란 매년 발행되는 수천 권의 책 중 많아야 50~100권, 최고 수준이라면 10~20권만이 받을 가치가 있다. “나머지 책에 대한 서평은 아무리 양심적으로 칭찬을 하건 욕을 하건 간에 본질적으로 사기다. 많은 책을 대충대충 평하다 보면 그 대부분에 대해 과찬하지 않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내가 보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대다수의 책을 그저 무시해버리고, 중요해 보이는 소수의 책에만 아주 긴 서평을 쓰는 것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오웰의 이 책은 서평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그야 물론이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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