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남자 이름 1712개-여자 1853개 중 골라야
올해 10살인 아이슬란드 소녀 해리엇 카듀(Harriet Cardew)는 다음 주로 예정된 프랑스로의 여름휴가를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할 처지에 놓였다. 정부가 그녀의 여권 발급을 불허한 것인데, 정부의 여권 발급 불허 이유는 황당하게도 그녀의 이름 때문이다.
아이슬란드 법규상 이번 사건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다. 26일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북유럽 국가인 아이슬란드는 국민 이름에 대한 규정이 엄격하기로 소문나 있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아이슬란드어 문법과 발음에 맞고 사회 통념에 어긋나지 않는 남성 이름 1,712개와 여성 이름 1,853개를 정해, 이 안에서만 이름을 짓도록 하고 있다. 아이슬란드어 철자에는 없는 ‘C’문자를 쓰는 ‘캐롤리나(Carolina) 등은 이름으로 쓸 수 없다는 식이다.
부모는 아이의 이름을 생후 6개월 안에 정해야 하며, 명단 안의 이름과 다른 이름을 짓고 싶으면 별도의 위원회에 인가 신청을 해야 한다. 정부가 지명한 3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아이슬란드어, 문화적 관습 등을 고려해 인가 여부를 결정한다. 개명 때도 마찬가지다.
해리엇은 14년 전인 2000년 아이슬란드로 넘어온 영국 요리사 출신 아버지 트리스탄(Tristan)과 아이슬란드 출신 어머니 크리스틴(Kristin) 사이에서 2004년 태어났다. 트리스탄은 고국을 그리워하며 딸의 이름을 영국식인 해리엇으로 지었다. 그러나 그 이름은 가족들과 주변 지인들이나 쓰는 반쪽 이름으로 전락했다. 정부가 그녀에게 붙여준 이름은 아이슬란드어로 소녀를 뜻하는 ‘스툴카’(Stulka)에 아버지 성을 붙인 스툴카 카듀였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그녀의 중간이름에라도 아이슬란드식 이름을 넣을 것을 종용하고 있다. 카듀라는 성 만으로도 이민자 분위기가 물씬 나는데 해리엇이라는 이름마저 너무 영국식이어서 여권 발급을 거부한 것에 대한 해결책을 먼저 제시한 것이다.
트리스탄은 “이민 당시 성(카듀)에 알파벳 ‘C’가 포함돼 곤혹스러웠지만 성이라서 넘어간 기억이 있다”며 “이름에 문제를 제기한 만큼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트리스탄은 조만간 해리엇의 중간이름을 아이슬란드 식으로 지어 개명을 신청할 계획이다. 가디언은 “인권침해 논란 등으로 매년 5,000명 가량인 아이슬란드 신생아 가운데 이름 때문에 문제를 겪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면서도 “아이슬란드 정부의 태도는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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