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신화
노먼 레브레히트 지음·김재용 옮김
펜타그램 발행·824쪽·2만8,000원
클래식계, 아니 예술계에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만큼 격렬한 관심의 대상이 또 있을까. 때로는 심오한 음악성으로, 그러나 대체로는 단원과의 마찰이나 기행 등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그들은 존재감을 확인시켜 왔다. 그 같은 통념이 극적으로 배어 있는 단어가 바로 독재자다.
그들은 그러나 반성할 줄 모른다. 미국 음반산업에서 클래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고작 3, 4% . 책은 저 같은 참혹한 현상의 원인으로 과도한 지휘자 권력을 꼽는다. 이 책이 120년에 걸친 서양 클래식 역사의 추악함에 대한 고발장인 이유다. 파시스트 권력에 무릎 꿇은 칼 뵘과 푸르트뱅글러, 음악을 내세워 기업 제국을 건설한 카라얀 등에 대해 인간적 결함, 치열한 경쟁, 사생활의 비루함 등의 철퇴를 서슴없이 내리친다.
파시스트 정권과의 야합 등 그들이 보여준 정치적 협잡이 20세기 전반부를 장식한 과오라면, 비행기를 타고 동과 서에서 번쩍하는 ‘제트족 지휘자’들의 물질적 야욕은 후반부의 추한 실상이다. 실은 지휘계의 몰락은 그렇게 배태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같은 일련의 과정이 자본주의와의 결탁과 긴밀히 연관돼 있음을 또한 책은 입증한다.
클래식 음악의 구조를 꿰뚫는 통찰력 외에, 책은 음악 팬이라면 무릎을 탁 칠 음악적 상식 또한 맛깔 나게 풀어낸다. “고음악 제국의 건설자인 크리스토퍼 호그우드가 고음악의 카라얀이라는 꼬리표를 얻었다면 로저 노링턴은 번스타인이라 할 수 있고 존 엘리엇 가디너는 토스카니니의 지망생이라고 할 수 있다.”(622쪽)
몇몇 지휘자의 왕성한 성욕, 권력에 탐닉하는 모습 등 책은 곳곳에서 그들의 이면을 서슴없이 드러낸다. 메타와 바렌보임은 유대계 마피아의 내부 거래자다.
책을 놓고 나면 교향악계의 존립이 우려스러울 정도다. 그러나 정명훈을 가리켜 “미래를 이끌 정상급 지휘자”라고 방점을 찍는 대목에서 한국의 클래식 팬들은 가슴을 쓸어 내릴지 모른다.
책은 고음악의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 실험, 기존 룰을 완전히 박찬 아웃사이더적 지휘자 등 대안적 모습도 제시한다. 지휘자의 전횡 없이 연주자들 간의 수평적 관계로만 교향악단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오르페우스 등 고음악 전문 단체를 중심으로 한 일련의 움직임이 그것이다. 동성애자ㆍ흑인ㆍ여성 지휘자 등 소수자들의 힘겨운 현실을 보여주며 클래식 음악의 경제적 토대를 짚기도 한다. 장병욱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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