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이 반대"발표 유족이 반박하자 "사실관계 확인 먼저"
상관·동료 이름 등 적혀 있을 가능성
유가족, 장례 일정 취소
고성 GOP(일반전초) 총기난사 사건을 저지른 임모 병장이 23일 자살시도 직전 작성한 메모의 공개를 둘러싸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임 병장이 진술을 거부하면서 ‘판도라의 상자’인 메모의 공개 여부에 관심이 쏠리지만 국방부의 말 바꾸기로 되레 의혹이 커지고 있다.
당초 메모 공개를 검토하던 국방부는 앞서 25일 “희생자 유가족이 메모 공개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며 “메모를 공개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유가족들이 “메모 공개를 반대한 적이 없다”며 반박하고 나섰다. 이에 김민석 대변인은 26일 “유가족들이 원칙적으로 메모장 공개에 반대하지 않았다”면서 “다만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에 공개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고 말을 바꿨다.
임 병장의 메모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사실상 유서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메모에는 임 병장이 자신을 ‘하찮은 벌레’, ‘돌에 맞은 개구리’에 비유하며 부대원들을 향해 원망과 적개심을 드러낸 표현이 담겨있다. 총기난사 범행동기를 유추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직접적 증거인 셈인데 특히 수술 후 회복 중인 임 병장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을 아끼면서 메모를 둘러싼 궁금증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관심의 초점은 메모에 상관이나 동료병사의 이름이 적혀있는지 여부다. 임 병장이 사건 당시 동료들을 향해 조준사격을 가했던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메모에 특정인의 이름이 등장한다면 가뜩이나 군 당국의 허술한 ‘관심병사’ 관리에 대해 사회적 비난이 커진 상황에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도 있다. 군 수사 관계자는 “메모를 유서로 본다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기 때문에 임 병장이 마음에 담고 있던 누군가의 이름을 적었을 가능성이 높다”며 “그래서 국방부가 공개 여부를 놓고 고심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군 당국이 총상을 입은 임 병장을 강릉아산병원으로 후송하는 과정에서 ‘가짜 대역’을 등장시켜 전국민을 우롱한 상황에 대해서도 진실게임이 계속되고 있다. 국방부는 당초 “강릉아산병원에서 취재진을 따돌리기 위해 대역을 사용한 것”이라고 했다가 병원 측에서 항의하자 “병원과 계약을 맺은 강원 129 응급환자 이송단에서 요청한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하지만 129 이송단도 이를 부인하자 26일 “국방부에서 지시한 것은 없다”며 선을 그은 뒤 경위파악에 나섰다.
한편 희생자 유가족들은 당초 26일로 예정된 입관식과 27일 합동영결식 등 모든 장례일정을 취소하고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겸 국방부 장관에게 면담을 요구했다. 김 장관이 25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이번 사건의 원인에 대해 “집단 따돌림 일 수 있다”고 한 발언 때문이다.
유가족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군 당국의 구조적이고 고질적인 문제를 개인적인 문제로 덮으려 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에 김민석 대변인은 “김 장관의 발언은 이번 사건을 두고 집단 따돌림을 언급한 게 아니라 아직도 우리 군 내부에 그런 현상이 있을 수 있다는 취지”라고 해명했지만 유가족들은 여전히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육군은 희생장병 5명에 대해 순직결정을 내리고 1계급 추서했다. 이에 따라 유족에게 사망보상금 1억900여 만원과 매달 114만원의 보훈연금이 지급된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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