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휴대폰을 개인 사생활 기록의 집합체로 인정, 수사기관의 무단 열람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디지털 프라이버시(사생활) 보호를 공식 인정한 첫 판결로 평가된다. 연방대법원은 25일(현지시간) 체포된 범죄 용의자의 휴대폰 기록을 확인하려면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 받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관 9명이 전원 일치 의견으로 이 같은 결정을 내려, 사법부가 현대 기술의 변화를 전폭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미국 수사기관은 경관의 안전과 범죄증거 보전을 위해 용의자 소지품을 합법적으로 수색,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결정문에서 “이 시대 휴대폰은 담뱃갑이나 지갑과 같은 소지품과 구분된다”며 “단순한 기술적 편의용품이 아닌 미국인의 프라이버시가 담긴 것”으로 전제했다.
이어 “스파트폰에는 단순 통화 기록뿐 아니라 개인의 병력, 정치적 선호, 성적 취향, 경제상황 등 많은 디지털 기록이 담겨 있다”며 휴대폰 무단열람을 식민지시대 영국군의 마구잡이 가택수택에 비유했다. 소송에서 미국 정부는 휴대폰 열람이 신체 수색과 물리적으로 구분할 수 없다는 반대 논리를 폈다. 그러나 로버츠 대법원장은 “이는 마치 말을 타는 것과 달 우주선을 타는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반박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이번 결정이 경찰의 법 집행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면서 “그렇지만 프라이버시(보호)에는 희생이 따르게 마련이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다만, 수사기관이 휴대전화 자체는 압수할 수 있고, 또 외부 무선조작을 막도록 전파차단 용기에 보관할 수 있게 조치했다. 이번 사건은 캘리포니아 주에서 체포된 마약 용의자가 경찰이 자신의 휴대폰 기록을 검색해 범죄 증거를 찾아냈다며 소송을 제기한 데서 비롯됐다. 미국 법무부는 대법원 결정 직후 수사기관들이 영장을 발부 받아 휴대폰을 기록을 확인하도록 조치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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