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몰이 규제 완화로 실적 부풀리기 현상도 부처 협업 통해 대안 찾고 민간위원도 적극 활용해야 세월호 이후 일방통행엔 제동 노동·선박 부문은 되레 강화
대통령이 주재하는 규제개혁 끝장토론이 열렸던 100일 전. ‘나쁜 규제’를 없애겠다며 마련된 자리였지만, 당시 분위기는 일방적이었다. 모든 규제는 ‘나쁜 규제’이고, 그래서 규제는 없애면 없앨수록 좋다는 의욕 과잉이었다. 불과 1주일 만에 후속조치가 마련되는 등 속전속결의 행보도 이어졌다. 당연히 부작용도 속출했다.
세월호 참사가 터지면서 이런 일방통행 식 여론몰이에는 제동이 걸렸다. 이제는 ‘좋은 규제’는 살리고 강화하되 ‘나쁜 규제’는 제거해야 한다는 균형 잡힌 시각에 대한 공감대가 어느 정도 자리잡은 상황.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한 규제개혁이 또 다시 부작용을 낳지 않기 위해서는
건수 집착, 무리한 할당량 부과, 부처별 과잉경쟁 등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정부 규제정보포털에 따르면 이날 기준 등록규제는 1만5,305건으로 3월20일 끝장토론(1만5,303건) 때보다 2건 늘었다. 물리적 방호 교육 및 훈련(원자력안전위원회), 농지 및 부속시설의 범위 관련(농림축산식품부) 규제다.
법률상 등록규제만 따지다 보니 규제가 오히려 소폭 증가한 모양새다. 그러나 현재 부처마다 폐지를 추진 중이거나 추가 검토 중이라고 발표한 규제 숫자는 48건에 이른다. 이중 41건은 연내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라 아직 성패를 가늠하기엔 이른 면이 있다.
새로 생긴 규제도 적지 않다. 선박 안전 관련 규제는 10건 이상 등록 대기 중이고, 예술인 복지 관련 규제와 물 관리 규제 등도 잇따라 신설될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참사 이후 “규제 완화가 능사는 아니다”라는 분위기가 한몫 했다.
무려 7시간에 걸친 끝장토론의 성과는 100일 즈음인 현재까지 이벤트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시 “모든 규제는 다 없애야 한다”는 식의 과잉의욕과 우호적인 여론이 규제 철폐 후 파급 효과나 부작용을 살필 여지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뷔페영업 거리제한 완화, 의료기기 이중 승인 등 생활형 규제나 중복 규제는 어느 정도 해소됐지만 논란이 컸던 학교 옆 호텔 신축은 사실상 무산된 게 대표적이다. 끝장토론에서 제기된 52개 과제 상당수는 여전히 검토 중인 채로 해당 부처에 머물러 있다. 대부분은 부처 협업이 필요하거나 이해집단의 갈등을 조정해야 하는 묵직한 주제들이다.
특히 노동 부문은 정치권이 경영상 해고 요건 강화, 우선 재고용 의무 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오히려 규제 강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환경 서비스산업 역시 국회 눈치를 보느라 진척이 더디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금까지 사라진 규제 대부분이 국회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규정이나 시행규칙, 지침이라는 점에서 국회가 향후 규제 개혁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무조건 없애라”는 군중심리가 확산되면서 ▦해외여행 면세한도 ▦기업 창업자 자손 세제 혜택 등 조세형평성을 엄밀히 따져야 하는 사안까지 철폐해야 할 규제로 지목됐다. 부담금 감면 요구 등 특혜성 민원도 쏟아졌다. 인삼 검사 일원화처럼 꼭 필요한 규제마저 농민 불편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나쁜 규제라는 공격에 시달렸다.
무리한 할당량 역시 문제다. 정부가 규제 개혁 목표를 경제부처 12%, 사회부처 8%로 일괄 적용하는 바람에 건수 위주의 부처별 경쟁을 부추겼다. 전체 규제의 16% 가량(2,428건)을 차지하는 국토교통부는 ‘규제총점관리제’, 산업통상자원부는 ‘규제청문회’ 등을 마련했고, 공정거래위원회는 테스크포스(TF)까지 꾸렸다. 공정위 관계자는 “다른 규제와 성격이 다른데도 할당량을 채우려니 힘들다”고 토로했다.
실적달성용 숫자 부풀리기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국무조정실은 최근 각 부처가 감축 대상 규제로 제출한 1,028건 중 886건만 인정하고, 나머지 142건은 단순 조문 정비, 부분 규제 완화로 판단해 부처로 돌려보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규제 개혁 100일 진행 과정에서 개선 및 보완할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해당 규제를 없앤 뒤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면밀한 검토, 부처 협업, 안정적인 예산 배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태윤 한양대 교수는 “규제 개혁은 단순히 규제를 푸는 게 아니라 지속 가능한 대안이 나올 수 있도록 여러 부처가 합심해야 가능하다”며 “부처마다 따로따로 규제 철폐에 나서면 부작용만 생긴다”고 말했다.
최병선 서울대 교수는 “미국은 규제 개혁을 위해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10%를 쓸 정도로 의지가 강하다며”며 “우리처럼 공무원들만 닦달하는 식의 개혁은 한계가 있는 만큼 민간위원들을 활용하기 위해선 예산 배정도 중요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초반이라 지지부진하지만 이전 정부보다 개혁 의지가 강해 차차 성과가 나타날 것”(김성준 경북대 교수)이란 의견도 있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