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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장병 상당수가 트라우마로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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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장병 상당수가 트라우마로 고통

입력
2014.06.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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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병사 사형판결 복역 중

2005년 대전국립현충원에서 열린 경기도 연천 중부전선 GP 총기난사 사건 희생 장병 합동 안장식.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5년 대전국립현충원에서 열린 경기도 연천 중부전선 GP 총기난사 사건 희생 장병 합동 안장식. 한국일보 자료사진

장병 8명이 숨진 2005년 경기 연천 GP(전방초소) 총기난사 사고와 장병 4명이 희생된 2011년 인천 강화도 해병대 총기 난사 참극 현장에서 직ㆍ간접 피해를 입은 장병들은 대부분 복무기간을 마치고 전역했다. 하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 후유증으로 의병 전역한 경우도 상당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 정신과 치료가 이뤄졌다.

25일 국방부 등에 따르면 총기 난사 당시 해당 부대에 근무했던 장병들은 참극 이후 곧바로 타 부대로 배치됐다. 2011년 7월 4일 인천 강화도 소재 해병대 2사단 소초 생활관에서 김모(당시 19세) 상병이 저지른 총기 난사에서 생존한 20여명의 장병들은 당일 곧바로 같은 대대 내 타 부대와 교체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당시 부대가 북한과 맞닿은 해안 경계 근무를 서는 부대로 중요한 임무를 맡았기 때문에 즉시 타 부대로 교체했고 생존 장병들은 예비대로 빠졌다”고 밝혔다.

2005년 6월 19일 경기 연천 GP 총기난사에서 살아남은 장병 27명은 본인 의사에 따라 GP관할 사단 내 다른 부대로 배치됐다. 당시 생존 장병들은 정신과 치료를 받은 뒤 10일간 특별휴가를 다녀왔고 이후 원하는 부대로 배치 받았지만 재배치 부대에서 이들에게 총기는 지급하지 않았다. 총기 난사 후유증으로“총기를 보면 현기증이 나서 만지고 싶지 않다”는 부대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생존 장병 가운데 15명은 참극 발생 3개월이 지나서도 사단 의무대에 입원해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주 1~2회 인근 병원에서 통원치료와 함께 정밀검사를 받았으나 결국 의병제대했다.

해병대 대원들은 상대적으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적었다. 동료 장병을 향해 총을 쏘는 김 상병과 몸싸움을 벌이는 등 추가 피해를 막는 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권혁(당시 19세) 이병을 제외하곤 나머지 장병 20여명은 정상적으로 복무를 마치고 제대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해병대원들은 의병전역을 수치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 상병을 제지하던 중에 총을 4발이나 맞는 부상을 당한 권 이병을 치료하던 국군수도병원이 총상과 외상 후 스트레스 증세 치료가 완료되지 않았는데도 권 이병을 가족과 멀리 떨어진 포항의 해군병원으로 이송하겠다고 통보해 한때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후 국군수도병원에서 통원치료를 받은 권 이병은 2012년 1월 의병 전역했고 추가 피해를 막은 공로를 인정받아 국가유공자가 됐다.

한편 경기 연천 GP총기난사를 저지른 김모 일병은 수사 과정에서 1개월 간 정신감정을 받았으며 2008년 5월 사형 판결이 확정돼 현재 경기 장호원 육군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해병대 총기난사를 저지른 김모 상병 역시 사형선고를 받았고 당시 김 상병의 범행을 도운 정 이병은 징역 10년을 선고 받아 복역 중이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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