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 동포 120여명과 모국 방문
"연해주서 성공한 외증조부 의병 조직 등 독립운동 지원 그토록 지켜내려 했던 한국 이렇게 발전해 자랑스러워"
“외증조부가 그토록 지켜내려 했던 대한민국이 짧은 기간 동안 이렇게 발전하다니 놀랍고 자랑스럽습니다.”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는 조금 특별한 사람들이 모였다. 러시아 극동 지역에 거주하는 124명의 고려인 동포였다. 이들은 올해 고려인 이주 150주년을 맞아 고려인돕기 운동본부의 초청으로 지난 19일부터 29일까지 10박11일 일정으로 모국 방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단일 방문단 규모로는 역대 최대다. 방문단에는 특히 독립유공자 최재형 선생의 외증손자인 쇼루코프 알렉산드르(43)씨가 아들 샤샤 알렉산드르(12)와 함께 했다. 이날 열린 ‘국회의장 초청 만찬회’에서 알렉산드르는 정의화 국회의장으로부터 감사패도 받았다. 일제 강점기 시철 외증조부의 독립운동 지원에 대해 알렉산드르씨는 “자랑스럽다. 잘 하신 일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1895년 함경도 경흥의 노비 출신인 최재형 선생은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뒤 청년 사업가로 크게 성공했다. 그러면서도 안락한 삶에 안주하지 않고 일본의 조선 침략에 항거해 의병을 조직, 게릴라전을 펼쳤다. 상해 임시정부 시절에는 재무총장으로 임시정부의 살림살이를 맡았다. 특히 1909년 10월26일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배후에서 지원한 주역이기도 했다.
그래서 알렉산드르씨는 이번 방문 중 안중근 의사 기념관(서울 중구 소월로)을 가장 의미 있게 둘러봤다고 했다. 그는 “어린 시절 할머니(최 선생의 딸)와 고려인들로부터 외증조부의 활약상을 듣곤 했다”며 “최 페치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페치카는 러시아어로 ‘난로’라는 뜻으로, 연해주에서 크게 돈을 번 최 선생이 주변 동포들을 따뜻하게 지원한 데서 나온 별명이다. 알렉산드르씨의 외삼촌격인 체 발렌치씨는 최 선생에 대한 책도 저술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알렉산드르씨는 정작 최 선생의 생가가 있는 연해주는 아직 방문하지 못했다. 지금 살고 있는 모스크바가 연해주와 너무 먼 탓이다. 그 동안 자녀들에게 최 선생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해 주지 못한 것도 부담이었다. 이번 방문에 큰 아들 샤샤를 동행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샤샤는 “예전에는 할아버지(최재형 선생)에 대해 잘 몰랐다”며 “이번에 한국을 방문해 우리 할아버지가 한국을 위해 얼마나 훌륭하고 중요한 일을 하셨는지 알게 됐다”고 했다. 방문 일정 중 에버랜드 놀이공원이 제일 재미있었다는 샤샤는 “처음 먹어보는 한국 음식이 너무 맵고 짜서 힘들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모스크바에서 독일계 전기회사의 판매ㆍ관리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알렉산드르씨는 한국의 첫 인상에 대해 “지난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마련해 놓은 박물관이 흥미롭고, 유공자들의 자손을 기억하는 점도 좋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도로에 꽉 찬 차량들과 교통 체증은 참기 힘들다”고 머리를 내저었다. 이번 방문에는 독립유공자 김경천, 박밀양 선생의 후손들도 참석했다.
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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