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과 윤리에서 섹스만큼 제어하기 힘든 것도 없을 것 같다. 수많은 조건에 따라 그 의미가극과 극으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사랑이고 행복이며 쾌락이고 자랑이자 치유인 것이 누군가에겐 증오이자 불행이며 고통이고 수치이며 폭행이 된다. 섹스에 대한 판단이 어려운 이유고, 그것을 노골적으로 까발리는 영화에 대해 평가하기 쉽지 않은 까닭이다.
덴마크의 거장 라스 폰 트리에의 신작 ‘님포매니악’을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다. 여성 색정광의 긴 여정을 그린 이 영화에 누군가는 경탄을 금치 못할 테고, 잔뜩 흥분한 성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이 영화에 누군가는 불쾌감을 드러낼 것이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평하자면, ‘님포매니악’은 관객을 쥐고 흔드는 트리에 감독의 고약한 재능이 빛을 발하는 흥미진진하고 도발적이며 강렬한 영화다. 그러나 동시에 영리한 꾀와 고집스런 신념에 갇힌 영화이기도 하다.
18일 개봉한 ‘볼륨 1’과 7월 3일 개봉하는 ‘볼륨 2’를 비교해볼까. 후자가 훨씬 강렬하며 폭력적이지만 스토리의 힘과 재미는 덜하다. 유머와 슬픈 정서 대신 어두운 기운이 강해졌다. 과잉이 두드러져 보인다. 영화 속 주인공도, 영화를 만든 감독도 욕망이 넘치는데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다.
피투성이로 길바닥에 누워 있던 조(샤를로트 갱스부르)가 자신을 도와준 독신남 셀리그먼(스텔란 스카스가드)에게 털어놓는 이야기가 ‘볼륨 2’에서 이어진다. 섹스의 희열을 잃어버린 조는 오르가슴을 찾아 새로운 세계를 두드린다. 말이 안 통하는 흑인 형제와의 슬랩스틱 코미디 같은 3인 섹스, 소파에 묶인 상태로 채찍을 맞는 마조히즘을 거쳐 조는 자기 혐오를 넘어선 긍정에 이른다. 억지로 섹스 중독자 모임에 나간 그가 “나는 당신들과 달라. 난 섹스 중독자가 아니라 님포매니악(색정광)이고 그런 나를 사랑해요. 내 더럽고 추한 욕정을 사랑해요”라고 선언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중요한 변곡점이다. ‘볼륨 1’의 첫 장면과 이어지는 마지막 부분에서 조는 자신의 첫 섹스 상대이자 오랜 동반자였던 제롬(마이클 파스)과 재회한다.
‘님포매니악’은 전신이 마비된 남편의 몸을 살리겠다며 온 마을 남자와 잠자리를 하는 백치 같은 여성을 그린 감독의 1996년작 ‘브레이킹 더 웨이브’와, 어린 아들을 죽게 만든 자신의 성적 욕망을 자책하는 여성을 내세운 ‘안티크라이스트’(2009)의 연장선상에 있다. 전작들처럼 이 영화도 관객을 옴짝달싹 못하게 궁지로 몰아넣는다. 표현 수위는 이번 영화가 가장 세다. 극단적인 성기 클로즈업(국내에선 흐리게 처리)과 기이한 섹스 묘사, 다양한 주석, 비뚤어진 유머로 관객의 색욕과 수치심, 지적 욕구와 도덕적 모순을 뒤섞어 감정의 소용돌이를 만든다.
예술영화라곤 하지만 전혀 난해하지 않다. 너무 친절해서다. ‘영화 또는 감독-관객 또는 평론가’의 관계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이야기꾼 조와 그의 이야기를 듣고 토를 다는 셀리그먼이 온갖 해설과 해석, 주석을 늘어놓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황하고 거창하게 느껴진다. 영화는 주인공 조를 닮았다. 자꾸 벌리고 자극하고 채우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공허함은 커질 뿐이다. 청소년 관람불가.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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