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기록지 복사.재사용 별도 검토 없이 품질 인증 자격 미달 시험원도 적발
산업부, 24개사 고소 지시 한수원 "안전 영향 없어 교체"
원자력발전소 정비에 사용되는 부품의 시험성적서를 위ㆍ변조한 사례가 무더기로 적발돼 원전 안전성이 또 도마에 올랐다. 원전뿐 아니라 화력발전소 방사선폐기물처리장 등 안전이 중시되는 관련 공인시험기관들에서 허위 검증과 부실시험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산업 안전 전반에 구멍이 뚫린 것으로 우려된다.
실태도 어이없는 수준이다. 한 공인시험기관 연구원들은 특정 전기용품의 온도측정 시험으로 얻은 온도기록지를 복사하거나 잘라 다른 제품에 재사용했다. 또 다른 기관에선 섬유제품의 수소이온농도(pH) 값을 임의로 조작했다. 이들의 손에서 3년간 수십~수천 건의 시험검사가 진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시험원이 아예 자격 미달이거나 별도 검토 없이 K마크나 Q마크 같은 품질인증을 부여한 경우도 있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 한국산업기술시험원,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 등 6개 국가공인시험기관을 대상으로 감사를 벌인 결과 고리 3, 4호기, 신월성 1호기의 각종 밸브와 냉각펌프 정비에 쓰인 부품 7건(5개 품목)의 시험성적서에서 결과 값, 시료 이름, 완료 날짜 등 여러 항목이 임의로 변경됐거나 삭제된 것으로 24일 드러났다. 원전 관련 4개 납품업체가 공인시험기관에서 받은 시험성적서를 위ㆍ변조해 발전설비 정비기관인 한전KPS에 제출한 것이다.
지난해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던 원전 시험성적서 위ㆍ변조 파문에 이어 또 유사한 감사 결과가 나와 원전 안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한층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수력원자력은 “대부분 원전 운전과는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부품이라 발전소 기능이나 원전 안전성에는 큰 영향이 없다”는 안이한 인식을 보였다.
원전을 정비할 때 필요한 부품을 구매하는 납품업체는 각 부품에 대해 공인시험기관의 검증을 거쳐 받은 시험성적서를 실제 원전 정비를 수행하는 한전KPS에 제출해야 한다. 한수원과 한전KPS는 이 시험성적서를 근거로 성능과 안전성이 입증된 부품을 사용해 원전을 정비한다.
이번 7건의 위ㆍ변조는 2011~13년 납품업체들이 제출한 시험성적서와 공인시험기관이 발행한 시험성적서를 일일이 대조한 결과 확인됐다. 적발된 품목들에 대해 한수원 관계자는 “원전 운영 기준인 기술지침서의 운전제한 조건에 해당되는 핵심 부품이 아니기 때문에 원전을 정지하지 않고 교체가 가능하다”며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확인한 뒤 원자력안전위원회에 교체 계획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원안위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과 함께 위ㆍ변조된 서류 관련 설비가 원전 안전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하기로 했다.
산업부의 이번 감사 결과에선 산업계 곳곳에 시험성적서 위ㆍ변조가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태안화력발전소 워터펌프, 제주화력발전소 냉각팬, 남부발전 가스터빈에 들어간 부품과 소재에도 위ㆍ변조된 시험성적서가 사용됐다. 또 3개 업체는 경주 방사성폐기물처리장 건설에 들어가는 용접 철망, 외벽 배수 자재의 시험성적서를, 8개 업체는 한국지역난방공사의 열배관 자재나 작업복 내피 소재의 시험성적서를 위ㆍ변조했다. “소관 공공기관의 시험성적서 3,934건 중 24개 업체가 제출한 39건이 위ㆍ변조로 확인됐다”고 산업부는 밝혔다.
산업부는 시험성적서를 위ㆍ변조한 24개 업체는 담당 공공기관이 사업당국에 고소하도록 하고, 앞으로 입찰 참가 자격을 제한하기로 했다. 또 부적절하게 시험검사를 수행한 공인시험기관에 대해서는 관계자에게 1~3개월의 업무정지 조치를 내리도록 요구하기로 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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