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고 조용한 아이인데, 이 죄를 어찌 다 받을지”
23일 오후 2시 55분쯤, 경기 수원의 한 아파트. 6평 남짓한 거실 한 구석, 노부부의 시선이 뉴스가 방영되는 TV에서 떠나지 않았다. TV에서는 21일 저녁 강원 고성 동부전선 일반전초(GOP)에서 동료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하고 도주한 임모(22) 병장의 체포소식이 흘러나왔다. 임 병장이 체포 전 스스로 왼쪽 가슴 위쪽에서 어깨 사이에 총을 발사,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과 함께였다. “내 새끼….” 초조한 얼굴로 TV를 보던 할머니는 손자가 다쳤다는 소식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할아버지는 말없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임 병장의 조부모는 손자가 총기를 난사하고 탈영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순간부터 거의 먹지 못했다. 이날도 두 노인이 먹은 것이라곤 두유 한 병, 팥빵 반쪽이 전부. 혹여 건강을 해칠까 염려해 다른 가족이 아침 일찍 사다 놓은 갈비탕은 가스레인지 위에서 차갑게 식은 지 오래였다.
“착하고 조용한 아이인데, 이 죄를 어찌 다 받을지 모르겠어요.” 임 병장의 할머니 허모(75)씨는 기자가 권한 청심환 하나를 삼키고 나서야 겨우 입을 뗐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얼마나 우리 새끼를 욕하겠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어요.” 할머니의 통곡이 거실을 울렸다.
이들에게 임 병장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자였다. 노부부는 손자가 열세 살이 되도록 아들 가족과 함께 살았다. 할머니는 “아직도 아이가 태어나서 포대기에 싸여 울던 그때가 생생하다”고 말했다. “생전 욕이란 것도 할 줄 모르고 살던 아이인데….”
다음은 임 병장 조부모와의 일문일답.
-손자는 평소 어떤 사람이었나.
(할아버지)“대인관계가 넓은 편은 아니었지만 엄마, 아빠, 형 네 가족이 아무 문제없이 잘 살고 있었다. 경제적으로도 불편한 것 없이 잘 살았다. 형제지간에 우애도 참 좋았다. 그렇게 서로 다정한 애들이 없다. 휴가 나와서도 형이랑 안고 장난하고 난리였다. 또 술은 입에도 못 댔다. 우리 가족이 체질상 술을 먹질 못한다.”
(할머니)“친구들이 막 장난스럽게 대하는 걸 싫어했다. 여자같이 얌전하고 차분해서 누구와 어울리기보다, 혼자 하는 걸 좋아했다. 컴퓨터도 좋아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 건가.
(할아버지)“걔가 중학교 때까지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문제가 있어서 2학년 2학기 마치고 자퇴를 했다.”
(할머니)“고등학교 들어가서 짓궂은 애들이 욕하고 함부로 대하는 게 싫었나 보더라. 친구들이 괴롭혀서 학교 다니기 싫다고 했었다. 애들이 툭툭 치고 장난치고 치대는 걸 정말 싫어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그 친구들한테 주의도 많이 주고 했었다. 아이가 학교에 늦게 등교하곤 했다. 애들이 괴롭히는 게 싫어서. 선생님이 학교를 아예 늦게 오라고 했었다. 아침 자습시간 넘기고 수업 시작 직전에 오면 아이들끼리 부딪히는 일이 적어지니까. 그런데 결국 선생님과 엄마가 설득에도 아이가 학교를 그만 두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우울증도 좀 있었다.”
-우울증이 심했나.
(할머니)“수원에 있는 병원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넉 달 넘게 치료했다. 며느리가 우울증 치료에 병원비가 많이 들어갔다고 했다.
-손자가 보호관심사병인 사실 알고 있나.
(할머니)“기사를 보고 알았다. 아이가 GOP를 간 것이 불행의 시작인 것 같다. 가지 않았으면 무고한 아이들이 죽지 않을 수 있었다. 죽은 아이 엄마들이 얼마나 억울할까.”
-아들(임 병장 아버지)은 뭐라고 하던가.
(할머니)“엎질러진 물인데 걱정만 하지 말고 뭐라도 챙겨 먹으라고 했다. 체포되기 전에 아들한테 산에 올라가서 확성기라도 들고 얘기해보라 했다.”
-고등학교 졸업은 어찌했나. 대학생활은?
(할머니)“이후에 혼자 검정고시 준비해서 합격했다. 대학생활은 무리 없이 잘 했다. 대학 잘 다니다가 1학년 1학기 마치고 입대했다. 2학년 때 가라고 했는데 빨리 다녀오는 것이 좋다고 그랬었다. 대학 가서는 공무원 한다고 원하는 전공도 찾아 가고. 애 아빠가 군대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에 필요한 책도 여러 번 사서 부치고 했다.”
-손자 사고 소식은 언제 처음 들었나.
(할머니)“항상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뉴스를 본다. 습관이다. 22일에도 TV를 틀었는데 22사단에서 사고가 났다고 나오더라.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우리 아이가 총에 맞은 줄 알고. 그런데 반대로 총을 쏜 것이었다. 손자가 그러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우리 아이 이제 어떻게 사나. 우리 손자는 그렇다 치고 죽은 죄 없는 애들은 또 어떡하나.”
-군 생활하면서 힘들다고 하진 않았나.
(할머니)“지난 5월에 휴가를 나와서 찾아왔었다. 애가 엄청 말라서 걱정했다. 얼굴이 반쪽이 됐다. 힘든 일 없냐는 얘기에 잘하고 있다고만 하고. 잘 먹는다고. 이제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니까 애가 고민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순한 것이 무슨 이유로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 뭔가 참고 참다가 폭발한 게 아닌가. 아마도 저도 죽을 생각으로 그런 짓을 저질렀을 것이다. 원한 관계가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전역이 얼마 남지 않았었는데.
(할머니)“6월에도 휴가 한 번 나온다고 했는데. 며칠 전에도 ‘아 이제 곧 우리 아이 휴가 나오겠구나’ 생각했었는데.”
-손자뻘 되는 군인들이 많이 죽었다.
(할머니)“정말 죄송스럽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피해 가족들 고통을 어찌 말로 표현하겠나.”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수원=김민정기자 mjkim72@hk.co.kr
남태웅기자 huntingm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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