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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허하라

입력
2014.06.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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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배

경희대 한방병원 교수

최근 유수의 해외 의학학술지에서 전통의학의 놀라운 성과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 진행성 위암이나 대지진 등에 의한 외상후스트레스 증후군 등에도 전통의학이 기여할 수 있다는 연구들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전통의학 발전의 가장 큰 밑바탕은 의료기기를 적극 활용한, 보다 객관화한 진료와 이를 통한 연구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전통의학인 한의학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리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보다 광범위한 과학적 도구를 이용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현대 의료기기를 적극 활용해 과거에는 설명하기 어려웠던 의학적 현상이나 치료법들을 규명하고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한의학’ 으로 거듭나는 것이 급선무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이 엄격히 규제되고 있다. 이는 우수한 한의학 자산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다.

중국과 일본의 전통의학 현황을 살펴보면 중국은 중의학의 발전을 헌법에 명시할 정도로 국가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를 통해 각종 전통의학상품을 수출, 매년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등 세계 전통의학 시장에서도 가장 경쟁력 있는 브랜드 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일본 역시 한약제제를 생산하는 단일 회사의 매출 규모가 8조원에 달할 정도로 엄청나다. 이들 국가는 법과 제도적 지원을 통해 자국의 전통의학을 국가 신성장 동력산업으로 육성, 발전시켜 세계시장 선점과 국부창출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중국, 일본 뿐 아니라 많은 나라들이 현재 250조원에 달하는 세계전통의학 시장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한의학이라는 뛰어난 학문과 우수한 한의사 인력, 잘 정비된 교육체계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규제와 제도적 미비에 발목이 잡혀 세계 전통의학시장에서 미래가치를 창출하지 못한 채 7조원 정도의 내수시장에 만족하고 있다.

세계전통의학 강대국인 중국ㆍ일본과 한국의 차이는 앞서 말한 것처럼 한의사의 자유로운 의료기기 활용 여부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 한의사가 진료현장에서 의료기기를 자유로이 쓰지 못함에 따라 객관적인 진단과 다양한 치료 기술과의 접목이 어렵고, 한약제제 개발 등 현대화 연구가 이뤄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의사들은 국민들에게 객관화하고 정확한 진찰ㆍ치료를 하려면 의료기기를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한의학은 음양오행에만 근거해야 한다는, 정작 한의사들조차 주장하지 않는 왜곡된 논거로 한의사의 의료기기 활용은 그동안 수차례 사법부나 행정부, 입법부에 의해 막혀왔다.

이런 현실에서 지난해 12월 한의사의 특정 진단기기 사용은 합법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시는 한의학 발전에 대한 국민의 여망이 반영된 참으로 의미있는 결정이다.

헌법재판소는 관련 의료법 조항 해석과 관련,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의료기기의 성능이 대폭 향상돼 보건위생상 위해의 우려없이 진단이 이뤄질 수 있다면 자격이 있는 의료인인 한의사에게 그 사용권한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해석돼야 할 것”이라고 판시했다.

최근 국회에서 열린 한의사 의료기기 활용에 대한 토론회 역시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한의학’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가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의사에 의한 의료기기 사용은 KCD(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에 의해 한ㆍ양방 진단병명이 통합된 현 시점에서 환자의 진료 편의성 증진과 안전성 확보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더불어 지금까지 국내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각종 한의학 연구가 훨씬 수월해짐으로써 한의학의 현대화와 이를 기반으로 한 한의약산업의 성장을 가져올 것이다.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 한의사의 의료기기 활용은 한의학이 국민에게 더욱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세계 전통의학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지체할 수 없는 국가 과제임이 분명해졌다. 행정당국은 한의사 의료기기 활용에 대한 지금까지의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국민과 국가에 옳고 당연한 일을 하루 빨리 해결해 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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