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이명박정부의 갈등관리는
과거 정부에서도 갖은 갈등 현안이 국정운영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참여정부에서는 한미FTA 문제로 이명박정부에서는 4대강 사업을 둘러싸고 대한민국이 둘로 갈라지는 극한 대결을 벌였다. 그렇다면 당시 정부에서는 이런 갈등 현안을 어떻게 해소했을까.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역임한 이정우 교수와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을 지낸 박재완 교수는 “두 정권 모두 노력에 비해 성과가 미진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시민사회수석실(노무현 정부), 사회통합위원회(이명박 정부) 등을 신설해 갈등을 조정하려는 시도는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참여정부가 대화와 소통을 하려 한 부분은 전 정부에 비해 진일보한 대목”이라고 평가했고, 박 교수 역시 “녹색성장이라는 일종의 중용 내지 실용의 관점을 부각시킨 게 하나의 성과”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이어 “참여정부 당시 화물연대 파업, 부안 핵 폐기장 문제, 평택 미군기지 문제 등 논란으로 5년 내내 바람 잘 날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노 전 대통령이 ‘에너지, 환경 문제를 다루는 지속가능발전위원회에서 사회갈등도 다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셨고, 참신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당시 대통령 자문기구였던 지속가능발전위원회는 정책자문과 갈등조정 기능을 분리하고 갈등조정을 전담할 갈등조정특별위원회를 별도 구성했다. 특히 관계부처 장관과 민간전문가 등 12명으로 사실상 ‘사회적 배심원’을 구성해 갈등 현안을 토론하고 해법 모색을 시도했다고 한다.
박 교수는 “이명박정부 당시 사회통합위원회를 출범해 공정사회, 동반성장 등 의제로 꺼내 들어 이른바 갑-을 관계를 없애려 노력했다”면서도 “일정 성과는 냈지만 갈등해결이라는 근본 흐름을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명박정부는 사회통합위 산하에 국가공론화위원회를 설치해 갈등 조정을 시도하려 했지만 무위에 그쳤다. 당시 갈등 해결은 국회 몫이라고 여긴 국회의원들의 비협조와 갈등 조정 전문가 부족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 박 교수는 “정치권에서 정쟁을 앞세우며 극단적 입장에 서 있는 일부 의원의 영향력이 줄어 들어야 갈등해소의 해법이 보일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김현빈기자 hb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