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 신평화시장에서 의류 수출업을 하던 우연숙(53)씨는 지난해 10월 애지중지하던 가게를 폐업했다. 이유는 하나, 세금 폭탄 때문이다. 우씨는 약 10년 전 동대문에 가게를 처음 열었다. 이 가게에서 무역업체를 통해 일본 바이어들의 주문을 받아 제작한 티셔츠, 카디건 등을 수출했다. 하지만 우씨는 가족의 생계를 감당했던 이 가게를 폐업할 수밖에 없었다.
우씨의 악몽은 물건을 납품받아 수출해온 나일무역이 탈세 혐의로 2012년 5월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시작됐다. 당시 나일무역은 탈세 사실을 숨긴 채 상인 150여명에게 ‘수출 대리업무를 더 잘하는데 필요하다’며 서명을 받아갔다. ‘우리는 나일무역의 하청업자가 아닌 직접 수출업자임을 인정한다’는 내용이었던 것을 상인들은 나중에야 알았다. 이 서명이 세금을 낼 의무는 나일무역이 아니라 직접 수출업자인 상인들에게 있다는 의도로 악용될 것을 상인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현행법상 수출업체와 하청업체는 부가가치세를 환급받을 수 있다. 상인들은 실제로는 부가세를 주고받지 않았는데도 거래를 유지하려 나일무역 측 부탁대로 부가세 계산서(납품액의 1%)를 발행해줬다. 나일무역은 이 계산서를 이용해 국세청에 100억원이 넘는 부가세를 환급 받았다. .
나일무역은 2012년 11월 국세청 조사4국으로부터 매출액 1,600억원에 대한 부가세 79억원 탈세혐의가 확정됐다. 업체는 세금 감액을 위해 동대문 상인들과의 2007~2012년 거래내역이 담긴 장부와 상인들이 발행한 부가세 계산서를 국세청에 공개했다. 나일무역은 부가세를 내지도 않은 채 세금을 환급받았지만 부가세 계산서를 발행하는 바람에 상인들이 환급받은 것으로 간주됐다. 결국 나일무역은 추징 세액이 54억원 깎였고, 이 돈은 상인 200여명에게 청구됐다. 우씨는 “계산서가 증거가 돼 우린 탈세범으로 내몰렸다”며 “세법에 대해 무지했던 것이 죄라면 죄”라고 억울해 했다.
우씨는 다른 상인들과 지난해 7월 16일 서울 중부세무서에 ‘탈세한 사실이 없다’며 이의를 제기하는 과세전 적부심사청구를 냈다. 하지만 이마저도 8월 30일 청구 취하되며 물거품이 됐다. 우씨는 “나일무역의 탈세 관련 업무를 전담한 유명 로펌 산하 Y세무법인 세무사 C(59)씨가 내 이름의 위임장을 임의로 작성해 취하서를 접수했다. 세무서는 내게 단 한 번도 확인을 하지 않았다”며 분노했다.
현재 우씨는 서울중앙지검에 C씨를 사문서위조 및 위조사문서 행사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해당 건에 대해선 서울경찰청도 수사를 진행 중이다. 우씨는 조세심판원장과 국세청장에게 탄원서를 냈다. 우씨는 “세금폭탄으로 가게와 모아놓은 돈을 모두 잃어버린 동료 상인도 있다”며 “영세 상인이 같은 피해를 입지 않도록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이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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