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후 4시경 검찰 수사관들이 중국에서 출발해 경남 거제시 고현항 인근에 막 진입한 바지선에 뛰어올랐다. 잠시 후 잡다한 물품을 보관하는 선용품 창고에 숨어 있던 이모(46)씨가 발견됐다. 이씨는 당시 허리와 양쪽 허벅지, 사타구니에 필로폰 7봉지 6.1㎏을 숨기고 있었다. 약 20만명이 투약할 수 있는, 소매가 기준으로 200억원이 넘는 양이었다.
이씨는 당초 바지선에서 밤까지 기다린 후 미리 연락해 놓은 낚싯배로 옮겨 타 밀입국할 생각이었다. 출항 당시 중국의 검문을 피한 거도 브로커와 선원들에게 2,000만원이나 주고 선원 출입증을 받아 가능했다.
이씨의 밀입국은 필로폰 밀수가 아닌 ‘신분 세탁’이 목적이었다. 마약 운반으로 9,000만원을 받으면 국내에서 자신과 얼굴이 비슷한 사람의 위조 여권을 만들어 중국으로 다시 출국하려는 심산이었다.
이씨는 2011년 8월 다른 마약 사건으로 수사와 재판을 받던 중 중국으로 도망갔다. 이후 중국에서 다시 마약 투약을 하다 2013년 10월 강제 추방됐다. 국내로 오던 배에서 이씨는 갑판에 신발과 안경을 벗어둬 자살을 한 것처럼 위장한 후 탈출, 중국으로 다시 밀입국해 지금까지 도피생활을 해 왔다. 당시 경찰은 이씨가 사망한 것으로 판단했다. 검찰 관계자는 “무사히 출국을 했다면 영원히 못 잡았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씨의 꿈은 결국 입항 3일 전에 첩보를 입수한 검찰에 의해 물거품이 됐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강해운)는 이씨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과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구속기소했다고 22일 밝혔다. 이씨에게 밀수를 지시한 국내 최대 필로폰 밀매조직 윤주종파 2인자 김모(45)씨는 기소중지하고 수배했으며 이씨의 밀입국을 도운 선원 2명과 브로커 1명의 행방을 쫓고 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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