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문창극을 버린 듯하다. 암묵 속 재가 보류는 스스로 물러나라는 신호다. 총리 후보가 모를 리 없다. 하지만 버틴다. 거역일까. 아니다. 순응일지 모른다. 하나님의 뜻이다.
“이번 ‘설화’ 때문에 많은 밤을 고민하며 ‘현역 기자 시절 숱하게 논(論)하고 설(說)했던 ‘박심(朴心·박근혜의 마음)의 실체가 이런 거였나’라고 탄식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랴. 이 모든 것이 ‘일인지하 만인지상’을 꿈꿨던 문창극 본인의 선택이었음을. 불퇴전의 각오도 뚜렷해 보인다.”
-문창극의 선택, 박근혜의 선택(동아일보 ‘광화문에서’ㆍ하태원 정치부 차장) ☞ 전문 보기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는 왜 삼척동자도 알 만한 이치를 모른 척하며 버티려는 걸까. 여론의 뭇매와 야당의 ‘총리 인준 원천 봉쇄’ 태세에 덧붙여 여당의 분위기도 일변했다. (…) 중앙아시아 순방 길에 이런 분위기를 전해 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문 후보자의 임명동의안과 인사청문요청서 재가를 21일 귀국 이후 다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 순간 문 후보자는 버려진 카드다. (…) 그런데도 문 후보자는 어제 자진사퇴 가능성을 일축하며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에 의욕을 보였다. (…) 그의 ‘몽니’를 이해하는 데는 주관적 심리와 인식을 더듬는 수밖에 없다. 두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첫째는 자신의 진정(眞情)을 알아주지 않는 여론의 뭇매와 함께 부를 때와는 너무 달라진 정부ㆍ여당의 태도가 속상하고, 억울하고, 원통해서다.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불가해한 일본군의 전시(戰時) 행동에 충격을 받아 일본문화와 집단의식의 뿌리를 탐구한 루스 베네딕트는 그 성과물인 국화의 칼에서 ‘부끄러움의 문화(Shame Culture)’에 주목했다. 기독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서양전통의 기계론적 ‘죄의식의 문화(Guilt Culture)’와 달리 개개인의 자의식보다는 주위의 눈길에 좌우되기 쉽다고 보았다. (…)
맹자는 사람이 마땅히 가져야 할 네 가지 덕성인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씨앗(실마리)은 모든 사람의 타고난 성품에 준비돼 있다고 보았다. 이 가운데 의로움은 스스로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마음(羞惡之心ㆍ수오지심)에서 비롯한다고 했다.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것과 동전의 양면이다. 따라서 스스로 부끄러움을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주위의 손가락질이 수치심을 일깨운다. 구미의 ‘죄의식’은 다르다. 주위의 손가락질과는 무관하게 정해진 규범을 어겼느냐는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자동적으로 결정된다. (…) 문 후보자가 대형교회의 장로로서 기독교적 세계관에 친숙하다면, 남의 손가락질에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 그의 말대로 ‘종교적 역사인식’을 밝힌 것이라면 부끄럽거나, 세상의 손가락질에 굴할 이유가 없겠다.”
-수오지심(羞惡之心)과 죄의식(한국일보 ‘황영식의 세상만사’ㆍ논설실장) ☞ 전문 보기
침묵은 기자 문창극의 직업윤리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몸뚱이로라도 말하는 게 그 시절 기자였을 터. 몰랐을 것. 말이 뭇매의 빌미가 될 줄은. 박근혜의 침묵이 이렇게 무서울 줄은.
“모든 게 문 후보자가 썼던 ‘박근혜 현상’(2011년 4월) 지적대로 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녀는 자기주장을 논리적으로 자세히 설명하지도,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하지도 않는다. 그저 몇 마디 하면 주변의 참모가 이를 해석하고 언론은 그것을 대서특필한다. (중략) 자유인인 지금도 이럴진대 만약 실제 권력의 자리에 들어서면 어떻게 될까?’ 기막힌 탁견(卓見)이었다고 하면 비아냥거림으로 들릴까?”
-수오지심(羞惡之心)과 죄의식(전문 보려면 앞의 글 참조)
“침묵이 개인의 명철보신(明哲保身)에는 도움이 될지언정 국가와 사회에는 오히려 폐해가 될 수 있다. (…) 설화(舌禍)와 필화(筆禍)로 세상이 시끄럽다. 어쩌다 놀린 부드러운 혀와 붓이 세인의 귀와 눈을 거치면서 날카로운 칼과 창이 되어 스스로를 찌른다. 이 때문에 침묵을 명철보신의 금과옥조로 여기는 군자가 많아질까 걱정이다. 한 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지만 오히려 그 말을 가지고서 그 사람됨을 알아볼 수 있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더 무섭다.”
-혀가 달린 금인(金人)(한국일보 ‘사색의 향기’ㆍ이종묵 서울대 인문대 교수) ☞ 전문 보기
동아 분열증이 중앙 몰염치보다 흥미롭다. 편집국 후배는 당장 안 굴러가는 나라가 걱정이다. 냉정히 내치라 종용한다. 하지만 매몰차지 말자는 논설위원의 호소가 지면에 나란하다.
“정치를 모르는 순진한 소리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대통령의 결정은 빨라야 한다. 문 후보자가 스스로 물러나기를 기다리는 것은 그를 예우하는 게 아니라 ‘보수 논객’이 설 수 있는 마지막 자리마저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본다. 진짜 고민은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 거취일 수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 김기춘의 ‘유효기간’은 다했다.”
-수오지심(羞惡之心)과 죄의식(전문 보려면 앞의 글 참조)
“여야 정치권은 김대중 정부 때 문제가 드러난 총리 후보자들에게 청문회 기회를 줬듯이 문 후보자에게도 스스로 변론할 기회는 줘야 한다. 박 대통령은 누구보다 원칙을 중요하게 여기는 정치인이다. 문 후보자가 스스로 사퇴하지 않는다면 그가 총리 부적격자인지는 청문회에서 최종 판정해야 한다. 그렇게 하라고 청문회 제도를 만들었다.”
-돌고 도는 물레방아 ‘청문회 공방’(동아일보 ‘오늘과 내일’ㆍ최영훈 논설위원) ☞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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