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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밭에서... 트렁크에서... 우수수 쏟아진 '검은 5만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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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밭에서... 트렁크에서... 우수수 쏟아진 '검은 5만원권'

입력
2014.06.20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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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자금으로 비자금으로

사건 터질 때마다 단골 지폐

고액 자산가는 탈루 목적 보관

미국ㆍ중국 동포들 따라

해외에서 다량 머물러 있기도

연도별 5만원권 발행잔액
연도별 5만원권 발행잔액

눈덩이처럼 확산되고 있는 박상은 새누리당 의원의 ‘뭉칫돈 미스터리’ 사건엔 상당히 흥미로운 사실이 눈에 띈다. 박 의원의 차량에서 또 아들 집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돈뭉치가 발견됐는데, 그 돈의 구성이 독특하다. 미국 달러화, 일본 엔화, 구권 1만원권, 그리고 5만원권 등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 화폐의 공통점은 추적이 쉽지 않거나(외화 및 구권) 거액을 묻어둘 수 있다는(5만원권) 점. 그만큼 치밀하게 돈 관리를 해온 것 아니냐는 추측이 쏟아진다. 역시 5만원권은 이번에도 빠지지 않았다.

5만원권 뭉칫돈은 정권 차원에서도 사용했다. 이른바 ‘관봉(官封) 사건’이다. 2010년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사건이 불거진 뒤 류충렬 전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은 그 해 4월 관련 사실을 폭로하려던 장진수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에게 5,000만원 돈뭉치를 건넸다. ‘한국은행 오만원권’이라고 기재된 띠지로 둘러싸인 채 압축비닐로 포장된 보기 드문 형태였다. 이는 한국조폐공사가 돈을 찍어 한국은행으로 보낼 때 포장하는 형태로 ‘관봉’이라 불린다. 그래서 관봉의 출처가 청와대의 비자금이나 대기업이라는 추측이 나왔지만 진상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많은 국민들의 기억에 지금도 생생한 사건은 김제 마늘 밭 사건이다. 2011년 전북 김제 금구면의 마늘 밭에서 5만원권 뭉칫돈이 무더기로 나왔다. 밭 주변에서 공사 작업을 하던 굴착기 기사가 우연히 돈 뭉치를 발견해 신고했고, 수사에 착수한 경찰이 넓이 990㎡의 마늘밭을 파헤쳐 무려 110억7,800만원을 찾았다. 22만장이 넘었다. 사건의 전모는 이랬다. 밭주인 이모(56)씨는 2009년 4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처남이 불법 카지노사이트를 운영해 번 돈을 10여차례에 걸쳐 넘겨받아 집 안에 숨겼다. 하지만 액수가 불어나며 부피가 커져 보관이 용이치 않자 마늘밭을 구입해 땅을 파고 돈을 묻었던 것이다. 2011년 2월에는 서울 여의도백화점 10층 물류창고에서 당초 폭발물이 든 것으로 추정됐던 상자에서 현금 10억원이 발견되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그 중 8억원이 5만원권이었다. 이 돈의 주인은 지금껏 나타나지 않은 상태. 누구의 것이었든 불법자금이었을 걸로 추정된다.

이렇게 은밀하게 보관되던 5만원권은 급할 때 요긴하게 사용된다. 김찬경 전 미래저축은행 회장은 수천억원대 부실대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되자 5만원권 240장(1,200만원)을 브로커에게 주고 중국 밀항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5만원권 품귀 현상은 고액 자산가들이 탈루 목적으로 5만원권을 대량 인출해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과세당국이 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 발표 이후 개인의 금융거래와 재산을 꼼꼼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 기름을 부었다. 실제로 5만원권의 연간 환수율은 발행 첫해인 2009년 7.3%에서 2012년 61.7%로 꾸준히 상승했지만 정부가 지하경제 양성화를 국정과제로 내건 지난해 48.6%로 떨어진 데 이어 올해는 20%대로 추락했다. 인출한 돈을 보관할 개인용 금고와 지폐 계수기 판매량도 지난해부터 부쩍 늘었다.

재미교포들이 다음달 본격 시행되는 미국의 해외금융계좌납세협력법(FATCA) 때문에 국내계좌에 넣어둔 돈을 5만원권으로 대거 인출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FATCA는 해외에 5만달러 이상 금융자산을 보유한 미국 시민권자, 영주권자, 장기체류자 등의 계좌 내역을 금융회사가 미 정부에 신고해야 하는 제도다. 우리 국세청도 한미 조세정보자동교환협정에 따라 조만간 금융사에서 보고받은 금융계좌 정보를 미국에 제공할 방침. FATCA를 통해 금융정보가 뒤늦게 드러나면 가산세를 물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일부 재미교포들은 아예 국내 계좌를 해지해 현금으로 인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5만원권은 중국 대륙에도 머물러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재중 동포들은 국내에서 번 돈을 부피가 작은 5만원권으로 바꾼 뒤 중국으로 가져가 위안화로 환전한다. 옌볜 등지의 사설 환전소는 국내보다 나은 환전 조건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최근 전국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5만원권 출금 수요가 가장 많은 곳은 재중 동포가 많이 거주하는 서울 대림동, 구로동 및 경기 안산시라는 시중은행의 통계가 나오기도 했다. 현금 거래가 많은 동대문 의류 상가나 사설 카지노 등지에 5만원이 주로 머물러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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