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로봇'이라 불리는 코봇, 작업 현장서 인간과 어깨 나란히 설치 가격 비교적 비싸지만 시간당 비용은 훨씬 더 경제적 코봇에 단조로운 일 맡기고 "인간은 창의적 일에 몰두" 기대감
여기 산업혁명 이래 자본가들이 꿈꿔온 노동자가 있다. 사각형 얼굴에 언제나 웃는 얼굴의 이 노동자는 어떤 지시에도 불평하지 않는다. 아프지도 않고, 하루 24시간 단조로운 일도 성실하게 해낸다. 휴일도 없다. 하물며 화장실에도 가지 않는다.
누굴까. 바로 재작년 9월 출시 이후 조립작업 현장의 풍경을 바꾼 휴머노이드 로봇, 백스터(Baxter) 모델이다. 사람의 머리처럼 본체 상부에는 얼굴 역할을 하는 스크린이 달린 이 로봇은 출시 이후 한동안 외신들의 단골 뉴스거리였다. 특히 정육면체 큐빅을 10분만에 풀어내는 화면은 온라인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코봇이 주도하는 ‘2의 로봇혁명’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이 60여년전에 꿈꿨던 인공지능은 최근에야 초보적 성공을 거뒀지만, 첨단제품 조립 생산 현장에는 이미 제2의 로봇혁명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인간 노동자와 동료로 지낼 수 있을 정도로 진화했다는 의미에서 ‘동료 로봇’(Collaborate Robot) 혹은 코봇(Co-Bot)이라고도 불리는 신세대 로봇들이 작업현장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존에도 자동차 조립공장이나, 조선소 등에서는 ‘로봇’이라는 소리를 듣는 기계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 기계와 코봇은 완전히 다르다. 1세대 로봇은 원래부터 사람은 범접할 수 없는 고온ㆍ고압ㆍ고중량의 초위험 환경에 특화돼 인간 노동자와 격리된 채 일하지만, 코봇들은 같은 공간에서 인간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일한다. 로봇공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사람 특유의 섬세한 손끝 기술을 재현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덴마크에서 제조된 ‘유니버설 로봇’은 수 백만 개 계란을 단 한번도 깨뜨리지 않고 용기에 담고 포장할 수 있다. 스위스 ABB사가 만든 코봇은 동료 인간 노동자가 너무 가까이 접근해 사고가 날 위험이 높아지면 바로 작동을 멈춘다. 두 개의 6축 관절 팔을 가진 백스터 모델도 로봇 팔이 움직이는 방향을 스크린 눈동자 움직임으로 표시한다.
사람과 비유되는 특성 때문에 코봇은 작업장에서 인격체로 대접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덴마크 유니버설 로봇의 엔리코 이베르센 최고경영자(CEO)는 “우리 고객 가운데 많은 분들이 코봇들에게 ‘로브’나 ‘베드르’와 같은 이름을 붙여주고 있다. 이는 코봇을 기계로 아닌 동료로 인식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코봇의 또다른 장점은 적응력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기존 1세대 로봇은 무게가 최소 수 톤에 달하고 동작을 바꾸려면 많은 비용을 들여 내장 프로그램을 바꿔야 했지만, 코봇은 팔을 붙잡고 새로운 동작을 반복해주면 바로 따라 할 수 있다.
이런 장점 때문에 비교적 높은 설치가격에도 불구, 코봇은 인간 노동자를 쓸 때보다 훨씬 경제적이다. 미국 스탠포드대 분석에 따르면 미국 공장 노동자의 시간당 평균 비용은 23.32달러이다. 반면 3년 보증조건으로 2만7,000달러를 주고 백스터 모델을 구입한 뒤 하루 8시간ㆍ연간 260일을 작업할 경우의 시간당 비용은 4.32달러에 불과하다.
코봇과 일자리 논란
상황이 이렇게 되자, 코봇이 사람 일자리를 뺏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터져 나오고 있다. 실제로 영국 옥스포드대 연구팀은 코봇 상용화가 진전될 경우 미국 일자리의 47%를 코봇이 맡게 될 것으로 예측했다. 또 약 702개 직업군이 코봇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닐리 크로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이 최근 “코봇 제조업체들은 일자리 상충 문제에 대해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경고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제조업 분야의 최강국인 독일 노동조합도 대응에 나섰다. 독일 기계산업노조(IG Metall)는 ‘작업현장은 로봇이 아니라 사람에 맞춰 결정돼야 한다’는 성명서를 내놓는 한편 ‘노동의 미래’라는 연구팀을 만들어 코봇의 등장이 미래 작업장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한 연구에 들어갔다.
그러나 코봇의 등장을 작업현장의 창조적 파괴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더 많다. 너무 단조로워 비인간적이기까지 한 작업들은 로봇에게 넘기고 인간은 더 창의적인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제2 기계시대’의 공동저자인 앤드류 매카피는 미국 공영방송 PBS와의 인터뷰에서 “로봇을 배척하기 보다는 혁신과 교육을 통해 인간 노동자에 대한 창조적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코봇에 장착되는 통제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스웨덴의 틀렐레보사 관계자도 “코봇에 따른 생산성 향상으로 회사 조직이 커지면서 추가로 50개의 일자리가 확보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영국 파이낸셜뉴스도 독일 폭스바겐사가 허리를 굽힌 채 노동자가 엔진 실린더헤드 내부에 플러그를 삽입하던 작업을 코봇에게 맡긴 걸 로봇혁명의 긍정적 사례로 제시했다.
로봇혁명 시대에 각광받는 미래 직업
그렇다면 로봇이 인간의 허드렛일을 대신할 미래에는 어떤 직업이 뜰까. 해답은 간단하다. 사람은 할 수 없지만 로봇은 할 수 없는 직업군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다. MIT대 디지털 비즈니스센터 에릭 브린졸프슨 연구원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직업, 예컨대 직업교육이나 노인돌봄 등과 관련된 분야에서 다양한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창조적 사고를 하는 미래 노동자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기존 교육시스템도 바뀌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학교 교육이 규칙을 준수하고 교사 가르침대로 따르는 것에 대해 가중치를 부여했으나, 앞으로는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외신에 따르면 이런 기준으로 현재 직업군을 분류하면 향후 20년간 전도가 유망한 분야는 사회 복지사, 작업 치료사, 치과 의사와 초등학교 교사 등이 꼽힌다. 반면 이들 직업군과 스펙트럼상 반대쪽에 있는 부동산 중개인, 회계사 및 감사 및 텔레마케터는 그 중요성이 갈수록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경제학자 타일러 코웬은 마크 주커버그를 성공 사례로 꼽았다. 주커버그가 벤처 갑부가 된 건 훌륭한 프로그래머에 머무는 대신, 학부 시절 그의 전공인 심리학 지식을 활용해 사용자들이 원하는 IT 환경을 구축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단조로운 일은 기계가 전담하게 될 미래에는 인간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창조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 성공하게 된다는 얘기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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