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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개신교, 친일의 개신교

입력
2014.06.19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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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일 오후 서울 강동구 소재 명성교회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와 회복을 위한 한국교회 연합기도회에 참석하여 기도를 하고 있다. 고영권기자 youngkoh@hk.co.kr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오후 서울 강동구 소재 명성교회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와 회복을 위한 한국교회 연합기도회에 참석하여 기도를 하고 있다. 고영권기자 youngkoh@hk.co.kr

선민(選民)사상은 위험하다. 비(非)선민의 희생을 정당화한다는 점에서다. 민족 갱생을 위해 들여온 개신교에는 차별이 없었다. 위계는 친일 부역자가 세웠다. 선민을 참칭하면서다.

“새것은 옛것의 폐해를 비판하기 마련이다. 기독교를 받아들여 조선을 갱신하려고 했던 개신교 선구자들이야 말할 것이 없다. 명동촌의 김약연과 조만식, 안창호, 이상재 등은 유교 사서삼경에 달통했으면서도 민족을 살릴 개벽종교로 개신교를 택했다. (…) 이들에겐 신앙과 민족이 둘이 아니었다. 신앙은 민족 동포를 갱생시켜 패망에서 부활시킬 구원자였고, 민족은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 정신을 실현시킬 터전이었다. 그러나 3ㆍ1운동 정신을 무력화하기 위해 ‘한일합방은 상천(上天ㆍ하나님)의 뜻’이란 글을 쓴 이완용이나 일제 귀족원 의원을 지낸 윤치호에게 자신은 반드시 영광을 누려야 할 선택자였고, 동포는 이리에게 바쳐도 좋을 희생양이었다. 이승만은 이러한 친일파와 손을 잡고 새로운 구세주 미국을 등에 업고 남한을 개신교 국가로 만들려 했다. (…) 그에게서 승리주의 신앙관은 볼 수 있지만 동포애는 느낄 수 없다. 친일파와 손잡은 이승만 장로와, 북에서 공산당으로부터 핍박받고 내려온 개신교 월남파의 결합이 이 나라 우익의 뿌리다. 수적 세를 불린 대형 교회 목사들이 그들을 외호하며 한국 개신교의 얼굴로 군림하고 있다.”

-지금 ‘고난의 역사’를 만드는 건 누군가(한겨레 ‘휴심정’ㆍ조현 종교전문기자) ☞ 전문 보기

“최근 화제가 된 문창극 총리 지명자의 일련의 발언에는 우리나라 보수 지배세력의 경제사관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한국인의 ‘민족성’은 게으르고 의존적 타율적이며, 이씨조선 500년간의 지독한 정체 상태에서 알 수 있듯 그대로 두면 아무런 희망도 미래도 있을 수 없는 집단이다. 여기에 자비로운 ‘하나님’은 이 불쌍한 민족을 위하여 두 가지의 장치를 예비하셨다. 하나는 식민 통치, 분단, 전쟁으로 이어졌던 온갖 고난과 시련이며, 또 하나는 서양, 일본, 미국을 잇는 ‘개명된 선진’ 세력이다. 실로 놀랄 만큼 거칠고 단순한 사관이지만, 이것으로 지난 한 세기 혹은 반 세기간 한국의 경제 발전 과정을 하나의 스토리로 꿰어내는 역할을 한다. (…) 이러한 경제사관을 설파하고 있는 이들은 누구일까? 한국인인가 아닌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이들은 물론 한국인이기도 하지만, 그런 천한 DNA를 나누지 않고 ‘개명된 선진’ 세력의 세례로 거듭난 개량종이라는 점에서 한국인이 아니기도 하다. 따라서 한국 민족의 유일한 살길은 이 반신반인과 같은 존재인 자신들을 온전히 권력의 자리에 모시고 그 지도를 따르는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 그 반대가 진실에 가깝다. 식민 통치, 분단, 전쟁, 빈곤과 독재로 이어지는 지난 100년간의 ‘고난과 시련’은 ‘신의 섭리’는커녕, 오히려 남북한의 지배 엘리트 바로 그들의 무능과 타락과 망상이 빚어낸 참극이었다.”

-한국 보수의 경제사관(경향신문 ‘경제와 세상’ㆍ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 전문 보기

한국에서 신은 세속권력의 수호자였다.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었다. 그렇게 꾸며준 건 일부 대형 교회 목회자들. 신을 판 대가로 기득권에 기생하며 세습과 탈세 등 특권을 누린다.

“한국 사회에는 식민 지배보다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가 더 크다. (…) 유산계급한테 위협적인 체제는 제국주의가 아니라 공산주의다. (…) 정권의 요직에 극우가 창궐하고 있다. (…) 제 민족과 국가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보수우파가 아니라 친미와 친일의 줄기를 이어가는 기회주의자들이다. 이들의 종교는 힘, 곧 권력이며 성장에 집착하는 한국의 개신교와 서로 통하는 지점이 있다. (…) 우선 기독교는 오랜 세월 서구 사회에서 통치를 위한 이데올로기였다. (…) 세상의 모든 고통에는 다 하나님의 뜻이 있으니 저항보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근면’하게 살기를 종용한다. 둘째, 교회는 소외계층을 위한 사회경제적 구휼 기관이었다. (…) 국가의 재분배적 개입이 최소화된 사회일수록 교회가 개입할 구석이 많아진다. (…) 사회주의적 이상은 찾아보기 힘든 북한식의 독재가 사회주의를 팔듯이 예수의 정신은 찾아보기 힘든 대형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팔고 있다. 지금 한국 교회에는 세습, 탈세, 성폭력 등 이 사회의 문제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신도가 고객이 된 지 오래다. 예수는 혁명적이지만 교회는 세속적이다. 예수는 희생을 택했으나 교회는 권력을 추구한다. (…) 하나님을 모욕하는 일에 가장 앞장서는 이들은 다름 아닌 선민의식으로 가득한 기독교인들이다. 기독교식으로 보자면 인간은 ‘신 앞에 평등한’ 존재다. 지금 이 시대를, 이 땅을, 예수가 살아간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하나님과 공산당(한겨레 ‘야! 한국사회’ㆍ집필노동자 이라영) ☞ 전문 보기

“세상이 물질중심이라면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종교가 마땅히 먼저 나서야 한다. 하나 이 땅의 종교는 세상 못지않게 물질적이다. 하나님의 것인 교회를 사고팔고 세습하며, 교회의 규모 및 목자들의 빈부격차와 양극화가 세상보다 더 크고, 대형 교회의 재산 분쟁과 세습 추문이 끊이지 않는다. 분파도 세상 어떤 영역보다 많으며, 교회의 설립과 해체 주기가 자영업 창·폐업 못지않고, 목자 배출 체계 및 취업경쟁이 세상 대학보다 더 치열하며, 수입에 대한 세금조차 내지 않는다. ‘떡으로만 살지 말라’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는 말씀대로 교회가 먼저 물질에서 내려오라. 교회 재산 완전 헌납과 공유화, 교회 회계 공개, 세습 절대 금지, 목회자 급료 형평화, 목회자 세금 납부, 미자립·중소 교회와 대형 교회의 상생을 실행해 교회가 먼저 교리를 실천하여 물질과 차별이 아니라 구원과 상생의 길을 간다면 그때 세상도 교회로부터 배우려 할 것이다.”

-한국 교회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6월 13일자 중앙일보 ‘중앙시평’ㆍ박명림 연세대 교수) ☞ 전문 보기

문인(文人)의 무기는 상상력이다. 현실에서 논리로 도출될 수 없는 뭔가를 그들은 연상(聯想)해낸다.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이들은 축구 너머를 떠올렸다. 가령 전환과 조화 같은 것.

“월드컵을 계기로 우리가 남미 여러 나라의 ‘거대한 전환’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다면, 우리는 이번 월드컵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단, 우리가 동참해야 하는 월드컵은 축구경기장 밖에 있다. 남미에서 진행 중인 진정한 월드컵은 한마디로 ‘반세계화의 월드컵’이다. 룰라의 브라질을 보자. 퇴임 이후 월드컵과 관련해 비판이 없지 않지만, 2003년부터 8년간 브라질을 이끈 룰라는 성장과 분배를 조화시키며 ‘모든 국민이 보다 높은 존엄성을 갖고 잘 사는 나라’를 추구했다. 차베스의 베네수엘라는 어떤가. 전 국민에게 돈키호테를 읽도록 한 차베스는 결국 풀뿌리 민주주의를 살려냈다. 마르코스 부사령관은 멕시코의 산악지역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이곳에서는 민중이 통치하고 정부가 복종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저항해온 남미에서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문학과 예술의 ‘무기화’다. 파라과이와 콜롬비아를 제외한 남미 대륙은 시와 소설, 연극과 노래를 통해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지향했다. (…) 우리가 브라질 월드컵에서 남미의 무한한 상상력과 놀라운 창의성, 열정적인 도전 정신을 재발견할 수 있다면, 그때부터 ‘세월호 이후’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다. 월드컵 축구대회 너머에서 남미대륙이 말하고 있다. 지금과 다른 세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짧아진 환호성… 광장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한국일보 ‘시인 이문재가 본 한국-러시아전’ㆍ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 전문 보기

“잉글랜드전에 나선 백전노장 피를로의 존재감은 수사자의 마지막 사냥처럼 장엄하고, 환상적이었다. 장엄함은 그의 오랜 경력으로 다져진 노련한 클래스에서 비롯되었고, 환상은 그의 젊은 동료들과의 새로운 조화에서 비롯되었다. 환상은 새로움과 등가(等價)이다. 그리고 그 둘은 오랜 전통을 전제로 한다. 전통이 깊을수록 새로움의 폭발력은 배가된다. 가장 희귀한 아름다움은 고목나무에 핀 환각의 꽃이다. 오늘 그 꽃의 주인은 피를로였다.”

-어슬렁거렸지만… 늙은 사자는 급소를 알고 있었다(6월 16일자 조선일보 ‘월드컵 내 마음의 별’ㆍ소설가 함정임) ☞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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