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규 서울대법대 명예교수
요즘처럼 사람들이 사건, 사고에 민감해진 때에는 생명과 재산의 손실에 대비하고픈 욕구가 커진다. 자연스럽게 생명보험, 재해보험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의 삶에 따라다니는 위험에 대비하려고 같은 위험에 놓인 수많은 사람들이 출연한 보험료를 기금으로 우연한 사고를 당한 사람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는 생명보험, 재해보장특약 보험이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보험에는 구성원이 고통을 함께 나눈다는 뜻이 담겨 있고, 사고위험에 공동으로 대비하는 사회적 안전망으로서의 의미가 담겨있다.
특히 생명보험은 사람의 삶과 죽음을 보험사고로 한다는 점에서 그 사회적 의미가 각별하기 때문에 늘 신중하고도 지혜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생명보험계약에서 피보험자가 질병이나 각종 사고로 사망하면 그 계약에서 정한 사망보험금을 지급하게 된다. 다만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 등이 고의로 그 사고를 일으킨 경우에는 보험자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상법 659조). 생명보험계약에서 재해사고로 인한 위험을 담보하는 재해보장특약을 붙인 경우 피보험자가 재해로 사망한 때에는 일반사망보험금의 2~5배를 지급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는 보험의 보장적 기능을 강화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재해를 두고 보험약관에서는 ‘우발적인 외래의 사고(다만, 질병 또는 체질적 요인이 있는 자로서 경미한 외부 요인에 의하여 발병하거나 또는 그 증상이 더욱 악화되었을 때에는 그 경미한 외부 요인은 우발적인 외래의 사고로 보지 아니함)’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재해보장에서의 재해는 급격하고도 우연한 외래의 사고로 인한 피보험자의 신체의 상해 또는 사망을 의미하고, 피보험자의 질병이나 체질적 요인에서 생긴 경우에는 비록 외부적 요인이 작용했다 하더라도 이를 재해사고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보험거래에서는 피보험자의 질병이나 체질적 요인에서 생긴 경우에도 재해사고로 가장하거나 재해사망보험금을 청구하는 도덕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를 제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등의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특히 생명보험의 이러한 난제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자살이다. 생명보험약관에서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에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정하고, 그 단서에서 ‘…보장개시일부터 2년이 경과된 후에 자살…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한 이른바 자살약관을 두고 있다. 이것은 보험계약성립 후 2년이 지나면 보험금을 노리고 보험사고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라는 기대에서 피보험자가 자살한 경우 보험수익자의 경제적 수요를 충족시켜 준다는 데 그 뜻이 있다.
그러나 자살은 고의로 목숨을 끊어 자신을 죽임으로써 그 가족을 비롯한 공동체에 커다란 상처를 주고 정신적, 물질적 손실을 입히는 비윤리적인 행위이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 가운데 가장 높다는 아름답지 못한 현상에서 벗어나려고 국가가 적극적인 자살예방 캠페인 등의 사업을 벌이는 상황에서, 경제적 목적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충동을 막기 위해서도 자살약관에서 정한 기간을 연장하거나 납입보험료만 환급하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일이다.
아울러 자살약관에서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를 보험자의 면책사유로 하면서 단서에서 ‘2년이 경과된 후에 자살… 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한 것은 면책기간이 경과한 후에는 피보험자가 자살했어도 보험수익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뜻이지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자살은 어느 경우에도 피보험자의 고의적인 행위의 결과로 나타난 것으로 우발적인 외래의 사고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2010년 개정약관처럼 ‘자살한 경우에는 재해 이외의 원인에 해당하는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명문의 규정을 두지 않더라도 ‘작성자불이익의 원칙’을 적용해서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는 의미로 풀이할 수는 없다. 보험자나 감독당국 또는 법원은 재해보장특약이 있는 경우 ‘재해’의 본래의 뜻에 따라 이를 악용하는 것을 방지하도록 해야 한다. 이는 생명을 존중하고 보험사기를 예방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