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중계에서 송재익 캐스터와 신문선 해설위원은 역대 최고의 콤비였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일본과의 원정경기. 이민성이 후반 막판 2대 1의 역전 골을 터뜨리자 송 캐스터는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라는 유명한 멘트를 날렸다. 신 위원은 흥분한 나머지“골~ 골이에요~”라는 고함을 질러 큰 인기를 끌었다. 이 말은 한 동안 성대모사의 단골 소재가 됐다.
▦ 웬만한 연예인 인기를 능가하던 이들 콤비의 신뢰가 추락한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열린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은 지네딘 지단이 손가락을 돌리며 교체를 원한다는 사인을 보냈다. 신 위원은 “심판 판정에 대한 불만의 표시”라고 했지만 다른 방송에서 차범근은 “부상 같다”고 했다. 교체돼 벤치에 들어온 지단은 캡슐 알약을 먹었다. 송 캐스터는 “영양제를 먹고 있다”고 했고, 차범근은 “진통제까지 먹는 걸 보니 부상이 심각한 모양”이라고 했다. 유럽축구에 정통한 차범근은 그날부터 시청률의 보증수표로 떠올랐다.
▦ 8년 만에 부활한 브라질 월드컵 지상파 동시중계에서 해설 경쟁이 뜨겁다. 화면이 동일한 상황에서 해설이 맘에 안 들면 시청자들은 가차없이 채널을 돌린다. 월드컵 해설에서 독보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차범근 부자(SBS)에 맞서 ‘꾀돌이’ 이영표와 김남일 콤비(KBS), ‘아빠 어디가’에서 예능감을 증명한 안정환과 송종국(MBC)이 시청률 대결을 펼치고 있다.
▦ 어제 러시아와의 1차전은 경기만큼 중계진의 입담도 흥미진진했다. 족집게 예언으로 ‘작두 영표’라는 별명을 얻은 이영표는 이근호 선수가 골을 넣자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라며 기뻐했다. 경기에 앞서 “촘촘한 러시아 수비벽을 깰 무기는 이근호 선수”라고 언급한 바 있다. 차범근과 호흡을 맞춘 배성재 캐스터는 “러시아가 산유국이다. 골키퍼가 기름 손이라 놓쳤다”고 말해 새 어록을 탄생시켰다. 안정환은 골이 터지자 “오늘 완전 때땡큐다. 나중에 소주 한 잔 사야겠다”고 했고, 송종국은 “소주는 무슨, 더 좋은 거 사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월드컵을 보는 재미가 커졌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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