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서윤 <(격)월간잉여> 발행·편집인
지난 14일과 15일, 1박 2일 동안 가둬놓고(?) 먹여주고 재워주며 20여개의 ‘사람책’(책을 읽듯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것) 세션을 여는 행사가 있었다. 사회적 기업가, 협동조합의 조합원, 시민사회 활동가 등 사회 변화에 대한 의지를 직업적으로 풀어나가는 사람들끼리의 관계 형성을 돕기 위해 기획된 행사라고 한다. 나는 관련 기록을 책자로 남기는 일을 맡아 행사에 참여했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것은 ‘기업가 정신’에 대해 토론했던 시간이다. 미국 보스턴의 뱁슨 대학교에서 기업가 정신을 전공하고 한국에서 기업가 정신에 대한 교육 활동을 벌이고 있는 사람이 ‘사람책’이 된 시간이었다. 그는 ‘올바른’ 기업가 정신을 강조했다. 뱁슨대학교의 정의에 따르면 기업가 정신은 ‘중요시 하는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포착한 기회를 두려움 없이 행동에 옮기며 도전적 삶을 사는 행동과 방식’을 의미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행동’에 방점이 찍힌다. 아무리 좋은 가치와 아이디어라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것은 기업가 정신이 아니다. 합리성에 기반을 둔 행동은 ‘우주에 내 흔적을 남기는 일’이고, 내 삶의 주인이 되는 일이다…고 그는 말했다.
좋은 말이었다. 나 역시 한 번 사는 인생, 의미 있다고 느껴지는 일을 하며 스스로의 삶의 주인이 되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살아가고 싶다. 그런데 그런 좋은 가치들을 꼭 ‘기업가 정신’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설명해야 할까? 조지 레이코프가 공화당의 조지 부시의 대통령 당선에 충격 받고 쓴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에 따르면 우리의 사고행위는 생각보다 비합리적이다. 어떤 언어가 뇌에 들어올 때 이미 형성돼있는 프레임을 통해 의미가 처리되는데, 이 과정은 무의식적으로 이뤄진다. 예를 들어 조지 부시가 사용했던 ‘세금구제’라는 말은 ‘세금’이라는 말과 ‘구제’라는 말을 이음으로써 세금은 고통이고 그것을 없애주는 사람은 영웅이라는 프레임을 형성했다. 이런 식의 언어 전술 덕에 조지 부시는 당선될 수 있었다.
‘기업가 정신’이 온갖 좋은 것들을 표상하는 것, 우리 모두가 기업가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프레임이 퍼져나가는 것이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을 은닉할까 우려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많은 자본을 가지지 못했고, 피고용인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가 많으며, 불안한 삶의 환경에서 살아간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은 자본가나 고용주의 마인드로 생각하고, 부자 감세를 옹호하며 사회안전망 축소를 방기하는 ‘쥐가 고양이 생각해주는’ 행동양태를 보인다. 최규석 작가가 네이버에서 연재 중인 웹툰 ‘송곳’의 한 등장인물은 “젊은이들이 어디서 단체로 호구 과외라도 받나 봐?”라고 의아해하는데,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감추는 프레임들이 바로 호구 과외를 시켜주는 것 아닐까.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초 다보스 포럼에서 기업가 정신을 강조하는 연설을 했다. 미래부는 기업가정신 함양교육 프로그램을 각 대학에 편성하고 지원금을 줄 계획이다. 청년실업 문제를 창업 지원을 통해 해결하려는 추세는 몇 년간 꾸준히 이어져왔다. 하지만 ‘창업 조장’은 실업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될 수 없다. 창업 기업의 약 60%가 3년 내에 망한다. 우리 경제에서 자영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분석도 있다. 무엇보다 창업을 통해 실업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삶의 불안을 오롯이 개인이 해결하도록 조장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지난 행사에서 만난 이들 대다수는 사회적 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건강하고 반짝이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명암은 있었다. 사회적 기업에 속한 한 사람은 기업과 자신의 비전이 같아 열심히 일했고 회사를 키우는 재미도 느꼈으나 요즘 들어 낮은 연봉과 불안한 미래로 의욕이 떨어져간다고 했다. 보편적 복지, 사회안전망이 갖춰졌을 때 ‘기업가 정신’도 더 빛을 발한다. 스스로 삶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려는 개인의 의지와 실행력은 멋진 것이지만, 국가가 개인의 의지에만 기대 국가적 책무를 방기해선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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