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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문수산성, 신라가 먼저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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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문수산성, 신라가 먼저 쌓았다

입력
2014.06.17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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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양요 당시 격전지인 김포 문수산성에서 발견된 삼국시대 신라 성벽. 고려문화재연구원 제공
병인양요 당시 격전지인 김포 문수산성에서 발견된 삼국시대 신라 성벽. 고려문화재연구원 제공

조선시대 산성으로 알려진 김포 문수산성에서 신라가 쌓은 것으로 보이는 삼국시대 성곽이 발견됐다. 매장문화재 발굴조사기관인 고려문화재연구원은 문수산성 정상부의 장대(장수가 주변을 관망하며 지휘하던 군사시설) 터에서 기존 성벽과 교차하는 높이 140~180㎝, 폭 380~500㎝의 또다른 성벽을 확인했다고 17일 밝혔다. 드러난 구간은 전체의 일부로 길이 100m 정도이고 형태는 문수산 정상부와 8~9부 능선을 따라 봉우리를 감싸는 태뫼식이다. 성벽 근처에서는 신라의 전형적인 토기인 인화문(눌러 박은 무늬) 토기편을 비롯해 흙으로 빚은 말 1점, 횡선문과 격자문 기와편 등 7~9세기 유물들이 나왔다.

이 성벽은 계단 모양으로 바닥을 파서 지형이 낮은 외벽을 먼저 쌓은 뒤 내벽과 동일한 높이부터는 내벽과 외벽을 동시에 쌓았다. 굴착부와 내벽 사이는 흙을 다져서 채웠다.

고려문화재연구원은 출토 유물로 보아 신라가 쌓은 성벽으로 보이나 정확한 연대를 알려면 삼국시대 성벽 전체 구간과 성내 유적의 추가 발굴 조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문수산성은 김포반도에서 강화도로 가는 길목의 해발 376m 문수산에 있다. 능선을 따라 해안지대까지 연결한 대규모 석축 산성이다. 문헌 기록으로는 조선 숙종 20년(1694) 바다로 쳐들어오는 외적을 막기 위해 쌓았다. 병인양요 때 한성근이 조선 팔도 포수들과 함께 프랑스 군을 맞아 격전을 벌인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당시 해안 쪽 성벽과 문루는 파괴됐고 산등성이의 성벽 6.2㎞만 남아 있다.

김포시는 1993년부터 문수산성 복원사업을 해왔다. 그 동안 성곽을 보수하고 북문과 남문을 복원한 데 이어 올해는 정상부 장대 건물과 여장(성곽 위에 방어용으로 낮게 쌓은 담), 남아문에서 장대에 이르는 성곽 유실 구간을 복원한다. 내년부터는 문수산성에 있던 3개 문루 중 하나인 공해루와 성내 주요 건물이 모여 있던 서문 터 일대를 발굴 조사해 복원할 계획이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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