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규 영남대 교양학부 교수
지난주 화요일 오후 무궁화호로 부산 가는 길에 잠시 정차한 밀양역 대기실의 TV로 ‘문창극 주필’이 총리 후보로 지명됐다는 화면을 보았다. 문창극이 누구지? 주필이란 것은 신문사 주필이라는 것 같은데 언제부터 그 말이 직업명처럼 사용됐지? 기자면 기자지 주필은 뭐지? 웃기기는 마찬가지인 대기자라는 것보다 더 높은 것인가? 총리 후보가 될 정도의 주필이라면 당연히 알 만한데 문창극은 누구지? 하도 답답해 초면의 옆 사람에게 물어보았지만 모른다고 했다. 아니 그런걸 뭐 때문에 알려 하느냐, 알아서 뭐 하려냐 하는 식의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그 뒤 교사들에게도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몰랐다. 강연회가 끝나고 밤 10시경 뒷풀이 자리에서야 그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들었다. 그가 썼다는 황당무계한 내용의 몇 개 칼럼 이야기가 전부였다. 미쳤군, 또 골로 가겠군 이라는 말밖에 아무 말도 못했다.
더 이상 알 필요가 없었다. 어디 그런 미친 칼럼을 쓰는 자가 한둘인가? 지난 번 윤창중이라는 자도 정말 알 필요가 없었다. 알 필요가 전혀 없는 자들을 왜 이렇게 알고 절망하게 만드는가? 사람이 그리도 없는가? 과거 총리가 초래한 일제 지배 탓에 잘 살게 되었다고 하니 아예 다시 일본 식민지가 되도록 하는 책임을 지는 책임총리를 하자는 것인가? 총리가 아니라 총독 후보자 아닌가? 아예 총독으로 이름을 바꾸어라. 이름이야 잘도 바꾸잖아. 국무총리가 아니라 친일총리로. 아니면 아예 총리 자리를 없애지! 아니 정치 한류로 일본으로 보내 아베 총리 다음의 일본 총리로 만들어 야스쿠니 신사에도 참배하고 위안부 사과니 배상이니 하는 말을 영원히 하지 않도록 하라! 우리 이웃에 있는 하느님의 축복인 일본의 지정학이 역시 하느님의 뜻으로 그렇게 좋다면!
문창극은 윤치호가 친일을 했어도 기독교인으로 죽었으니 위대하고 특히 영어로 일기를 쓴 것이 위대하다며 그렇지 못한 우리는 다 죽어야 한다고 했다. ‘어린지’ 대신 영어 일기쓰기를 들고 나올까 걱정이 돼 하는 말이지만 설령 영어일기 쓰기가 하느님 뜻이라고 해도 그걸 못 쓰면 당신만 죽으면 되지 우리 모두, 특히 아이들을 죽어야 한다고 하지 말기 바란다. 윤치호 등을 어떻게 생각하든 자유이지만 그런 것을 입 밖에 내면 망언이 되니 조심하라. 특히 게으르고 무능한 DNA를 가진 국민을 개조하겠다고 나서거나 과거에 그랬다고 보듯이 다시금 일제의 힘을 빌려 개조하겠다는 소리는 하지 말기 바란다.
문창극을 비롯한 일부 기독교인들이 세상만사를 하느님의 뜻이라고 보는 것은 나 같은 무신론자도 안다. 그러니 그들이 임진왜란도 일제 침략도 명성황후 시해도 위안부도 해방도 분단도 독재도 모두 하느님 뜻이라고 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전혀 이상하지 않다. 기독교 입장에서 한국사를 쓴 유명한 책에도 나오는 것이니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것을 하느님에게 바쳐야 한다고 생각하니 서울도 나라도 바칠 대상으로 삼는 점도 그들에게는 당연하다. 하느님에게 서울을 바친다고 했던 서울시장도 있었지 않은가? 다행히도 하느님이 서울을 가져가지 않았지만 말이다. 심지어 돈도 몸도 집도 다 바친다고 한다. 이처럼 하느님에게 바치는 것은 당연하고, 하느님의 뜻에 의해 일제에 바치는 것도 당연하지만 무상급식이나 분배 정의를 주장하는 자들은 빨갱이들이니 그들에게는 절대 내줄 수 없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 중에도 기독교인들이 많고, 성경에서도 하느님이나 그 아들인 예수님이 돈이라고는 전혀 받지 않고 빵도 주고 포도주까지 무상으로 나누어 주는 데 말이다.
그런데 이런 문창극의 역사관과 그를 총리 후보로 삼은 박근혜 대통령이나, 뉴라이트 역사가를 국회에 초청하는 김무성 의원 같은 사람들의 역사관은 얼마나 다를까? 같다고 생각해서 그런 사람을 총리로 삼자는 것이 아닌가? 뉴라이트니 하는 사람들은 이제 같은 편의 교육부 장관이 아니라 총리가 나타났으니, 그것도 하느님의 섭리로 나타났으니 얼마나 기쁠까? 하느님의 섭리로 독재가 더욱 굳어지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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