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회사 홈페이지에 재발 방지 다짐
각종 재난 겪으며 대비책 마련
세월호 유사 사고에도 전원 구출
대다수 일본 초등학교는 교내 옥상에 풀장을 갖추고 여름방학 전 열흘 가량 수영 강습을 한다. 졸업하기 전까지 웬만한 수영실력을 갖추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일본이 학생들에게 수영을 가르친 것은 대형 해상재난 사고가 계기가 됐다. 1955년 세토 내해를 운항하던 시운마루호 침몰 참사다.
수학여행에 나선 난카이 중학교 학생 등을 태우고 가던 이 배는 안개 속에서 다른 선박과 충돌해 침몰해 168명이 숨졌다. 사건 이후 일본 당국은 기상악화 때 아예 선박의 출항을 금지하는 등 안전 규제도 강화했다.
흔히 일본을 방재 대국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일본도 처음부터 완벽한 방재 시스템을 구축한 것은 아니다. 각종 재난 경험을 밑거름 삼아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철저하게 원인을 분석하고 대비책 마련에 힘쓴 결과가 오늘의 일본을 만든 것이다.
2009년 11월에 발생한 아리아케호 침몰 사고는 선박 종류와 규모, 사고 발생, 전개 과정 등이 비슷해 일본판 세월호 사고로 불린다. 당시 선장의 침착한 위기관리 대응과 해상보안청의 신속한 구조 작업으로 승객과 선원을 전원 구출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일본 당국은 이 사고가 적재 화물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발생한 것을 알아냈고 이후 자동차, 컨테이너 등의 결박 방식을 개선했다. 아직까지 일본에서는 비슷한 이유로 발생한 선박 사고가 한 건도 없다. 일본의 재난 전문가들은 ““한국 해상관계자들이 일본의 이런 조치를 조금이라도 신중하게 받아들였더라면 이 같은 원시적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고 일본에서 후진적 사고가 전혀 발생하지 않는 것은 물론 아니다. 2005년 4월에는 서일본철도 후쿠치야마선 쓰카구치-아마가사키역 구간을 달리던 열차가 탈선, 인근 아파트를 들이받는 어처구니 없는 사고로 승객 106명과 기관사 1명이 숨지는 참사가 났다. 직접적인 사고 원인은 기관사의 과속이었지만, 배후에 자동열차정지장치 미설치, 관행적 과밀운전, 징벌적 교육 등 승객 안전보다 돈벌이에 급급한 회사측의 관리부실이 지적됐다
2011년 3월 대지진 이후 발생한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도 조직 사회의 병폐가 빚어낸 후진적 재난사고의 대표 사례로 언급된다. 전문가들은 쓰나미 발생시 원전 전력 공급 전원이 차단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해왔지만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로 주요 요직을 차지한 도쿄전력 간부들은 원전 내 안전보강 작업 사실이 알려질 경우 정권에 부담이 될 것을 우려해 이런 지적을 외면했다.
심지어 사고 후 원자로 건물에서 수소 폭발이 발생하자 직원 90%가 소장의 명령을 어기고 원전 밖으로 도망쳤다. 원전 직원들이 원자로 비상냉각장치의 통제 방법을 몰라 허둥대는 사이 사고가 겉잡을 수 없이 커진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하지만 후쿠치야마선 열차 탈선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일본 시민 사회의 감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본보기가 됐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 유가족과 시민단체는 사고 원인을 제공한 철도회사 간부들이 법정에서 잇따라 무죄 선고를 받자 거대 기업에 형사 책임을 묻는 ‘조직벌’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이후 일본 내 모든 원전 가동이 중단된 것도 시민단체의 철저한 감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재난의 현장을 보존해 후세에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시도도 있다. 효고현 고베시는 6,3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1995년 1월 한신대지진 현장 일부를 고베 메모리얼파크로 조성해 공개하고 있다. 지진 여파로 처참하게 갈라진 도로 바닥과 기울어진 가로등이 지진 이후 단정하게 정비된 주변과 대조를 이루며 피해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서일본철도는 지금도 회사 홈페이지 메인 화면 가장 눈에 띄는 곳에 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 관련 내용을 실어 사고 재발 방지를 다짐하고 있다. 마나베 세이치 사장은 사죄문을 통해 “같은 사고를 다시 일으키지 않는 것이 우리 회사의 책임이며 변함 없는 의지”라며 “안전성 향상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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