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온 어린왕자가 못내 서운해 한 것 중 하나는 아무 때나 해지는 광경을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고향 별 B612에서 그는 슬퍼질 때마다 해가 지는 걸 지켜보곤 했는데, 워낙 작은 별이라 몇 걸음 옮기기만 하면 언제든 황혼녘에 닿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황혼이란 그러니까, 하루 중의 특정 시간이 아니라, 찾아가는 ‘장소’였던 셈이다. 어린왕자의 말을 듣고 화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지구라도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닌데. 미국이 정오일 때 프랑스에서는 해가 지니까, 1분 안에 프랑스에 갈 수만 있다면야 아무 때나 황혼을 볼 수 있겠지… 가만 새겨보자니 시공간 감각이 모호해진다. 정말 프랑스에서 미국까지 1분 안에 갈 수 있다면, 지구는 어린왕자의 별만큼 작아진 거나 매한가지 아닐까. 정오를 원할 때 정오에 닿고 밤을 원할 때 밤에 닿을 수 있다면, 우리 역시 집에 가거나 공원을 산책하는 기분으로 시간 속을 다닐 수 있을 테니까. 허튼 상상인 것 같지만은 않다. 1분까지는 아니더라도 프랑스와 미국을 오가는 시간은 ‘어린왕자’가 나온 1943년에 비해 한참 단축됐다. 그 단축된 시간만큼 인간에게 지구는 작아진 것일 테다. 지금 서울과 광주를 기차로 이동하는 데는 3시간이 걸린다. 내년에 고속철도가 개통되면 1시간 반 만에 닿는다 하니, 그 시간만큼 지구는 또 조금 작아지는 것이겠지.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작아져, 언젠가는 어린왕자의 별만큼 아담해지지 않을까.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