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니ㆍ시아파 보복전 양상
소모적 장기전으로 변질 우려
"이라크 총리 돕자"
시리아 정권ㆍ헤즈볼라 등
범시아파 연합 꿈틀
수니파 국가 사우디ㆍ쿠웨이트
행동 나서면 걷잡을 수 없어
이라크 사태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급진 이슬람국가 건설을 추구하는 수니파 계열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ISIS) 반군이 정부군 포로를 대거 처형하고, 재반격에 나선 정부군과 시아파 민병대도 반군을 300명 가까이 사살했다. 종파 갈등에서 비롯된 보복전이 극심한 인명피해를 낳은 소모적 내전으로 번질 기세다.
보복의 악순환으로 수니ㆍ시아파 대립이 격렬해질 경우 종교적 신념을 중시하는 아랍권 국가 다수가 종파에 따라 직ㆍ간접적 개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최악의 경우 중동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숙적 이란에 도움을 요청하면서도 군사 개입 수준을 놓고 원칙을 정하지 못한 채 엉거주춤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심화하는 내전위기
외신들은 지난 13일 시아파 최고 성직자 알리 알시스타니가 ISIS에 대한 성전을 선언한 걸 계기로 사실상 이라크에서 종교 내전이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알시스타니 발언 직후 시아파 청년 수 천명이 모병에 응해 전투지역에 배치됐고, 시아파 무장조직 지도자 출신인 현 이라크 정부의 하디 알아미리 교통장관은 바그다드 북동부 디얄라주에서 교전을 지휘하고 있다.
이라크내 두 종파의 대립 역사와 현실 여건도 살벌한 내전의 장기화를 예고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시아파 무장세력은 미군 점령기인 2006∼2007년 수니파와 대치하며 보복 공격을 주고 받았다. 시아파 알누가바 민병대 아부 와레스 알모사위 대변인은 “ISIS를 지원ㆍ지지하는 모든 이가 테러리스트이며, 그들 모두를 공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라크 의회의 수니파 출신 살림 알주부리 의원은 “시아파 민병대의 결집과 확산은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며 “ISIS도 반대지만 시아파 민병대도 반대한다”고 우려했다.
ISIS가 이라크 제2도시 모술을 점령하면서 물적 토대를 강화한 것도 우려 요인이다. 아랍권 위성방송 알아라비아에 따르면 ISIS는 모술 점령과 동시에 이 곳에 있는 이라크 중앙은행 금고에서 4억2,900만달러의 금괴와 현금을 차지했으며, 이라크 정부군을 위해 미군이 공여한 현대적 무기가 보관된 병기창도 손에 넣었다.
한편 영국 BBC는 수니파 반군세력 내부에서 분파간 주도권 다툼에 따른 분열 조짐이 있다고 16일 전했다. 수니파 무장단체 ‘이라크혁명 군사회의’는 이날 모술 서부의 시리아 접경도시 탈아파르를 점령한 반군세력의 주축은 ISIS가 아닌 자신들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특히 잔혹 행위로 비난 받는 ISIS를 야만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자신들은 제네바 협정을 준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동 전역으로 확산되는 전운
‘정부군이 반군을 막을 수 없다는 게 분명해졌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13일 연설처럼 미국도 사태수습을 위해서는 외부 개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난 주말 걸프만으로 조지 HW 부시 항공모함 전단을 파견하는 한편, 중동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과 서둘러 대화에 나서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해석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5일 미국 정부 고위관계자들을 인용해 미국과 이란 간 직접 대화가 이번 주에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또 이번 대화를 계기로 양국 관계가 급속히 해빙되고 올해 7월로 시한이 다가온 이란 핵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외부 개입을 위한 속도감 있는 물밑 작업에도 불구, 미국은 일부 이란 병력의 이라크 내 진입을 묵인하는 등 실제 행동에는 소극적이다. 제한적 형태의 외부 개입이라도 이라크 내 급진 수니파 세력이 자극 받아 강력한 공세에 나설 경우 아랍권이 수니ㆍ시아파로 양분해 대립하는 상황도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궁지에 몰린 누리 알 말리키 이라크 총리를 돕기 위한 범 시아파 연합은 이미 가동되기 시작했다. 지난 15일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 공군이 ISIS의 북쪽 점령지에 폭격을 가했고, 레바논의 시아파 헤즈볼라도 연계를 모색하고 있다. 외신들은 가능성은 낮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등 미국의 전통 우방인 수니파 국가들도 행동에 나설 경우 지역 정세에 큰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사태가 악화할 경우 미국으로서는 이라크 수니파 반군 저지와 사우디와 쿠웨이트 등 우방과의 관계 설정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목표에 직면하게 된다.
위기의 오바마 행정부
11월 의회 중간 선거를 앞둔 미국 공화당의 공세도 거세지고 있다. 급진 알카에다 세력이 발호하는데도 오바마 대통령이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미국 안보까지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미 의회의 대표적 강경보수파인 공화당 린지 그레이엄(사우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은 15일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라크 전쟁의 대실패가 이슬람 급진세력에게 또다른 9·11 테러를 준비할 수 있는 중요한 기지를 마련해줬다”고 비판했다. 같은 당의 마이크 로저스(미시건) 하원의원도 폭스뉴스에 나와 “알 카에다가 미국 인디애나주 만한 영토를 확보한 셈”이라며 “테러리스트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9ㆍ11 테러를 계획하던 상황을 미국이 다시 직면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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