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아르바이트생의 유가족들은 하루하루가 상처다. 세월호 사고 희생자ㆍ실종자ㆍ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는 안산 단원고 학생 유가족 위주로, 일반인 피해자 가족 대책위원회는 인천 용유초 동창 유가족 위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생의 유가족은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 정부, 각종 대책위원회의 연락 한 번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세월호에서 아르바이트로 안전요원 일을 했던 방현수(20)씨의 아버지 기삼(50)씨는 인천시청의 일반인 가족대책위 사무실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한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법률 지원, 추모사업 등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던 기삼씨는 며칠 전 또 상처를 입었다. 일반인 가족대책위로부터 아르바이트생들은 서류상 일반인 승객에도, 세월호 선원에도 속해 있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아들 현수와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다 변을 당한 현수의 이종사촌형 김기웅(28)씨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관련 부처에 문의했지만 공무원도 “몰랐다, 확인해보겠다”는 말뿐이었다. 법률 문제에 대한 상담은 안산의 가족대책위와 함께하라고 했다. 어머니 김지숙(51)씨는 “아르바이트생인 아들은 죽고 나서도 외면 받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이런 무관심에 지쳐 유가족들은 삶의 터전을 떠나고 있다. 선상 불꽃놀이를 진행했던 김기웅씨의 어머니 김광숙(61)씨는 최근 인천을 떠나 큰 딸이 사는 강원도 인제로 이사했다. 김광숙씨의 동생인 지숙씨는 “오래 전 이혼하고 기웅이와 둘이 살던 언니가 혼자서 견디기 얼마나 힘들었으면 고향 같은 곳을 등지겠느냐”며 가슴을 쳤다.
방현수씨의 부모는 인천에서 운영하던 식당을 팔아버렸다. 이들은 동네를 떠날 생각을 하고 있다. 지숙씨는 “20년간 산 데다 장사까지 했으니 현수를 모르는 사람이 없지요. 보상금 많이 받아서 팔자 펴는 줄 아는 사람들이 뒷말도 많이 하고…, 일단 조용한 곳으로 떠나고 싶다”며 한숨을 쉬었다. 세월호 참사와 정부의 무관심은 인천에서 오순도순 모여 살던 이들 자매들까지 뿔뿔이 흩어지게 했다.
인천=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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