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만학도다. 나이가 들어 뒤늦게 공부하는 학생이다.
돌아보면 대학 생활은 글자 그대로 간난신고였다. 이른바 민주주의라는 대의 앞에서 나는 행동했다. 대학시절 두 번의 제적과 복교를 겪었다. 대학에 들어간지 12년만인 서른세살 때 학사모를 쓸 수 있었다. 그리고 50줄 문턱에서 다시 책가방을 들었다. 이순에 접어들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건 내 삶의 여유가 넘쳐서 덤으로 얻은 게 아니다. 오로지 공부가 하고 싶어서 끊임없이 도전해 일궈낸 ‘보석’이다. 만학의 즐거움이 세상에서는 ‘희망’으로 진화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책을 편다.
나는 1954년 충남 홍성군 은하면 산골에서 태어났다. 1973년 홍성고를 졸업한 뒤 이듬해 숭실대 공대에 진학했다. 과 대표를 맡았고, 유신 치하 삼선개헌 반대 시위에 가세했다. 그 시절 풍경대로 강제징집됐다. 1978년 군에서 제대했지만 돌아갈 학교는 없었다. 두 해 뒤 ‘민주화의 봄’이 찾아오면서 복교했다. 군사정권이 들어섰다. 복학생 환영식 때 반정부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다시 제적당했다. 1983년 재복교를 거쳐 1986년 마침내 학사학위를 받았다.
낙향해 홍성군청 청원경찰이 됐다. 대형 수질 오염 사고가 터진 이후 각 시ㆍ군이 일용직인 환경감시원을 모집했다. 환경기사 1,2급 자격증을 지닌 나는 합격했다. 1991년 환경직 9급 공무원으로 채용됐다. 2000년 6급으로 승진했다. 축산폐수처리사업소 등에서 근무하며 홍성군내 최초의 환경직 공무원답게 성심을 다했다.
가슴 한 켠에 늘 도사린 ‘학문의 꿈’이 다시 꿈틀거렸다. 나는 2004년부터 공주대 대학원에 들어섰다. 환경호르몬을 비롯한 유해물질을 연구하느라 꼬박 10년간 밤을 지샜다. 지난 2월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더불어 공직생활도 다했다. 이 달말이면 끝이다.
나는 다가오는 가을이면 대학에 출강한다. 후학들과 학문을 공유하면서 계속 만학도의 길을 갈 것이다. 나 홍성읍사무소 환경담당 6급 공무원 김종은, 끝까지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늦깍이 학생으로 남겠다.‘현장과 책’양수겹장으로 쌓은 식견을 디딤돌 삼아 절박한 환경문제를 딛는 지혜를 찾아나설 것이다. 만학도의 길은 아들의 강제징집 때 충격으로 앞서가신 어머니를 향한 보은이다. 또 못난 남편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아내 양정자씨에게 전하는 사랑의 표현이기도 하다.
내 공부의 끝은 없다. 나이와 상관없다. 나는 공부를 통해 도전과 열정이라는 우리네 삶의 가치도 더 살찌울 수 있다고 믿는다.
최정복 대전본부장 cj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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