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집 인문학자
중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황제로 꼽히는 당 태종은 “천하는 한 사람의 것이 아니며 만인의 것이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는 황제가 된 뒤에도 늘 책을 가까이 했다. 그러나 그가 ‘정관의 치(貞觀之治)’의 대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위징(魏徵) 같은 신하들을 가까이 두고 썼기 때문이다. 수나라 말기 와강군에 들어갔던 위징은 당에 귀순했고 황태자 이건성의 시종관으로 진왕 이세민을 제거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권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건성은 위징의 말을 듣지 않았다. 형을 제거한 이세민(태종)은 그를 잡아다 물었다. “네놈은 어이하여 우리 형제를 이간질했느냐?” 하지만 위징은 태연하게 답했다. “만일 황태자께서 소신의 말을 들었더라면 오늘과 같은 일을 당하지 않았을 겁니다.” 누구나 세민이 그를 죽일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는 위징의 정직함을 높이 사서 간의대부로 삼았다. 태종은 과거의 원한 관계를 탓하지 않고 필요한 인재를 끌어들여 중요한 자리에 앉혔고 이들이 바로 태종을 도와 정관의 치를 이뤘다.
그런 태종이었지만 자신에게 아부하거나 꺾이지 않고 논쟁을 벌인 위징이 미웠던 모양이다. 성인이 아닌 이상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황후에게 푸념했다. “위징, 저 시골 촌뜨기를 내 반드시 죽일 거요.” 그랬더니 황후가 잠시 자리를 떠 내실로 들어가더니 정식 예복을 입고 나와 무릎을 꿇었다. “폐하, 감축드립니다. 위징을 죽인 다음에 하고 싶은 일 다 하실 수 있어 수 양제처럼 쾌락을 누리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창부수라더니, 황후도 대단한 사람이었다. 태종의 복은 그런 충신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당나라의 복은 그런 황제를 모셨기 때문에 가능했다. 훗날 위징이 세상을 뜨자 태종이 통곡하며 말했다. “짐은 세 개의 거울을 가지고 있었다. 청동으로 거울을 만들어 의관을 바로 하고, 역사를 거울로 나라의 흥망성쇠를 알고, 사람을 거울로 삼아 잘한 일과 못한 일을 알았다. 이제 위징이 죽었으니 거울 하나가 깨졌구나.”
무릇 지도자의 그릇은 그래야 한다. 그런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 어리석은 지도자는 제 편에 있는 사람들만 줄 세워서 듣고 싶은 말만 하도록 한다.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관료가 간신이다. 이들은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주군(이들에겐 그저 자신에게 혜택을 베푸는 ‘주군’일 뿐이다!)의 비위만 맞추고 뒤로는 제 이익만 탐한다. 그런 자들이 오랫동안 나라를 주물러대며 망가뜨렸다. 그게 진짜 적폐다. 그 적폐들이 쌓이고 쌓여 터진 고름이 세월호 참사다. ‘우리가 남이가’라고 뻔뻔히 외치며 ‘끼리끼리’ 해쳐먹고, 위로는 눈치만 보며 아래로는 권위만 휘두른 관료들, 자본의 탐욕에 눈 먼 아귀 같은 자들이 ‘손에 손 잡고’ 쌓아온 적폐가 주범이다. 시민들은 그걸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쇄신을 요구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뜬금없는 ‘국가개조론’이다. ‘국민, 국토, 주권’으로 이뤄진 국가는 멀쩡하다. 멀쩡하지 않은 건 그 사람들이다. 말로만 종복이라고 떠드는 자들이다.
민주주의는 절차적 정의가 실현되는 정치적 장치이다. 그러나 대통령 말 한마디에 국가의 구조와 골격이 제멋대로 휘둘린다. 그걸 간언하기는커녕 앞다퉈 국가개조를 합창한다. 그게 간신들이다. 그 합창에 힘입은 지도자는 의기양양 개조를 외친다. 주지가 바뀌어야 한다고 하니 큰법당과 요사체 건물을 바꿔 돌려막잔다. 정작 개조해야 할 건 시민도 제도도 아니다. 대통령 자신부터 바뀌어야 하고, 관료사회와 탐욕적이고 천박한 자본의 횡포를 막는 방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게 진짜 개조의 핵심이다.
태종은 자신을 죽이라고 부추겼던 위징을 품었고, 황후는 분에 못 이겨 그를 죽이겠다는 황제에게 정신 차리라고 간했다. 그 힘들이 성대를 만들어냈다. 그럴 수 있는 의식구조를 만드는 것이 진짜 개조다. 시스템의 문제이기 이전에 사람의 문제라면 그것부터 고쳐야 한다. 나는 그대로고 너만 바꾸라는 것, 그것 자체가 폭력이고 독재다. 변질된 국가개조론이 또 다른 ‘10월 유신’의 유령이 아니길 빌 뿐이다. 껍데기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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