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단체 페멘소속 4인방
가부장제·섹스산업 등에 반대
그들 나름의 저항하는 방식 담아
분노와 저항의 방식, 페멘 페멘 지음ㆍ갈리아 아케르망 엮음ㆍ김수진 옮김 디오네 발행ㆍ296쪽ㆍ1만5,000원
2009년 8월 24일 우크라이나 독립기념일을 맞아 한 여성이 수도 키예프 마이단 광장에서 상의를 벗고 시위했다. 그녀는 가슴에 “우크라이나는 매음굴이 아니다”라고 적고 머리에 화관을 쓴 채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었다. 우크라이나에 만연한 남성주의를 정면 비판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의 주인공 옥산나 샤츠코는 2008년 결성한 우크라이나 여성단체 ‘페멘(Femenㆍ넓적다리를 뜻하는 라틴어로 여성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femme과 발음이 같다)’의 회원이다. 샤츠코와 안나 훗솔, 사샤 셰브첸코, 인나 셰브첸코 등 페멘 창립 멤버 4인이 옷을 벗고 세상에 저항하는 이유와 목적을 담아 ‘분노와 저항의 한 방식, 페멘’을 썼다.
책은 이들이 평범한 소녀에서 온건사회운동가로, 다시 격렬한 투사로 변모하는 과정을 회고록 형식으로 풀어낸다. 이들의 최초 사회운동인 ‘지하철 여성 전용칸 확보’ 캠페인과 거대 보일러 업체의 늑장 정기점검을 비판한 ‘광장 샤워’ 퍼포먼스는 페멘의 순진했던 초창기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다가 늘어나는 회원만큼 관심 분야도 점차 넓혀, 나체로 푸틴에게 뛰어들고 다보스포럼 현장에 나타나 구호를 외치는 ‘격렬 사회단체’ 이미지를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저자들이 이 같은 변화의 과정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서술한다.
이들은 나체 퍼포먼스가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는 점을 숨기지 않는다. “행사에 무게를 실어주는 것은 미디어 권력의 힘에 달렸”고 “기자들이란 눈길을 끄는 기삿거리만 찾기 때문”에 그들은 여성성의 상징인 가슴을 무기로 삼았다고 밝힌다. 여성의 나체가 아니었다면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언론이, 정작 옷을 벗자 ‘격렬한 투사’라는 이미지를 덧씌웠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하지만 이들은 투사로 불리기를 꺼리지 않는다. 자기 소개를 하는 1장에서 이들은 ‘훌리건’ ‘선동가’ ‘여전사’ ‘파괴주의자’로 스스로를 설명한다. 그러나 이 같은 명명과 달리, 이들은 페멘의 활동이 한없이 순수하고 심지어 단순하기까지 하다고 책에서 역설한다. 가부장제 반대, 섹스산업 비판, 제국주의 배척 등 전세계 진보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했던, 그리고 현재도 하고 있는 운동들이다. 이 같은 보편적인 인권운동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초창기 가슴을 무기 삼아 언론의 관심을 끌었던 것처럼-이들은 이제 언론이 덧씌운 투사 이미지를 활용해 대중의 관심을 지속시키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거리에서 육체의 속살을 드러낸 저자들은, 책을 통해 급진적 이미지 속에 숨어있는 보편 타당한 정신적 속살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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