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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와 추장

입력
2014.06.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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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육학부 교수

또 한 번의 선거가 끝났다. 선출된 많은 지도자들을 보면서 미개하다고 간주되는 ‘원시사회’의 추장이 생각났다. 추장이 되는데 가장 중요한 자질은 남의 어려움을 나의 일처럼 생각할 뿐 아니라 그걸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관대함이다.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이, 쪼잔한 이들은 절대 추장이 될 수 없다. 여기에 더해 남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조달해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 능력으로 인한 신망이 사라지면 냉정하게 버림받는다. 우리는? 어떤 수단으로든 자리를 차지하기만 하면 능력이 있든 없는 권력이 주어진다. 그래서 그 권력을 위해 없는 능력도 있는 것처럼 선전한다. 선출할 때만 속이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단 그 자리에 오르면 임기가 끝나기 전에는 권력을 계속 행사한다. 주민에게 버림받아 쫓겨나는 일 같은 일은 혁명적 상황을 빼면 일어나지 않는다.

능력과 관대함을 시험하기 위해 많은 원시부족 사이에선 정례적인 선물게임이 벌어진다. ‘포틀래취’라고 불리는 이 게임에선 남들이 답례할 수 없을 만큼 큰 선물을 하는 이가 승자가 된다. 귀중한 물건을 “이거 다 없애도 돼”라고 말하듯 불태우거나 파괴해 버리기도 한다. 그렇기에 추장이 되었을 땐 경제적 부는 대부분 상실된다. 반대로 경제적 부를 움켜쥐고 놓지 않는 자는 정치적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우리는? 부가 없으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권력을 가질 수 없다. 부가 있으면 ‘능력 있는’ 자들을 사서 권력을 얻을 수 있다. 권력은 새로운 부를 축적하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 서양인이 처음 ‘인디언’들과 만났을 때, 추장이란 어떤 존재냐는 물음에 그들은 “어렵고 힘든 일에서 남들보다 앞장서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남들에게 필요한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는 사람, 한 마디로 ‘능력있는 이’를 뜻한다. 이 때문인지 레비스트로스는 슬픈 열대에서 남비콰라족 추장인 자신의 친구가 종종 자신들이 지고 있는 부담이나 책임에 대해 ‘불평’을 털어놓곤 했다고 전한다. 그런 부담을 더는 지기 힘들다고 느낄 때 다른 이에게 추장 자리를 넘긴다고 한다. 우리는? 궂은 일이야 아랫것들이 해야지, 지도자가 어디... 힘든 일은 사람 사서 시키면 되고.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아랫것들에게 엄중하게 책임을 물으면 된다. 지도자는 폼 나는 일만 하면 된다.

말이 지도자지 추장에게 주어지는 권력이나 권리는 별로 없다고 한다. 단 하나 특권이 있다면 일부다처가 허용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류학자 클라스트르에 따르면 이는 부족민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일을 추장 혼자 하기엔 힘들어서 추장을 도와줄 가족들을 확장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래서 그는 반어적인 어조로 말한다. 추장제 사회란 ‘부족민이 추장가족을 착취하는 사회’라고. 우리는? 당근, 부와 권력을 가진 자가 국민을 착취한다. 지도자가 국민을 착취하는 사회와 국민이 지도자를 ‘착취’하는 사회, 어디가 더 좋을까?

그래서 인류학자들은 ‘미개’라는 비난과 ‘발전’이란 자부심처럼 바보 같은 게 없다고 말한다. 자랑스런 ‘민주주의’로도 이 간극을 뛰어넘긴 어려워 보인다. 효율성이란 이름으로 주어지는 권력과 ‘안정’이란 이름으로 보장된 자리, 맘에 안 들어도 바꿀 수 없게 만드는 제도, 그리고 부의 권력 때문일 것이다. 이러면 어떨까? 정치인이든 관료든 권력을 행사하는 자리에 올라가려면 재산의 일정 비율을 국민을 위해 헌납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렵게 사는 이들의 사정을 최대한 체험할 수 있도록 빈민지역에 관사를 지어주고, 메일 지하철이나 버스로 출퇴근하게 하는 것이다. 가능하면 동네 반상회에도 꼭 참가하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래도 안되면? 혹은 사고를 치거나 국민들의 불만이 발생하면? 언제든지 소환, 조사해 책임을 묻고 다른 이로 바꿔 버리는 것이다. 이 정도는 돼야 ‘미개한’ 원시인들보다 크게 뒤떨어지진 않는다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 ‘하인’을 자처하는 ‘civil servant’라는 말에 부합한다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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