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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산의 일각

입력
2014.06.1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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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식민지배 옹호 문창극 총리후보 내정 후 소수자 비하

국제적 망신을 언론의 자유라고 착각하면 정부 여당도 동류

“종교인으로 교회에서 한 말이고… 총리가 되면 공정하게 업무처리를 할 것이다.” 2011년 장로로 재직중인 교회에서 일본의 식민지배는 게으르고 자립심 부족한 한국인의 DNA를 고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요, 한국전쟁과 분단은 미국을 붙여주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망언을 한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이에 대한 해명 삼아 한 말이다.

2012년 대통령 후보간 토론회에서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는 증세 없이 온갖 복지정책을 다 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친 후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가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하자 ‘그래서 제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 아닙니까’라고 했다. 일단 대통령이 되면 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지만 전혀 해내지 못했다. 그가 약속한 복지 공약은 줄줄이 철회 내지 축소의 길을 갔다. ‘일단 맡겨만 주시라니깐요’는 개그의 소재로는 가능해도 현실에서는 위험한 발상이다. 일단 맡겨본 박근혜 정부는 위기 대처에 완전 무능해서 세월호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시민만 해도 304명 이상이다.

문창극 총리 후보의 발언은 저 발언보다도 더 위험한데 교회용과 공직용 발언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말은 생각에서 나오는 것인데 생각이 계속 달라진다거나 자리에 따라 다른 소리를 한다면 공직을 맡기기 어렵다. 이런 식이면 일본 총리를 만났을 때와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을 때 다른 소리를 할 테고 그렇다면 어느 나라도 한국 총리의 말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후보자로서 이 발언 자체가 중국과 일본에서 다른 파장을 일으키는 것만 봐도 그가 총리로서 얼마나 자격이 없는지는 명백히 알 수 있다.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이 아베 총리의 극우적인 행보에 냉담한 자세를 취해온 것에 서운함을 표시해온 일본 극우파들은 지지자를 얻은 듯 신이 났고 역사문제에서 한국과 공동보조를 취해온 중국으로서는 당혹감을 표시하고 있다. 우경화하는 일본에서 정부 당국의 반성을 요구하면서 힘든 싸움을 계속 해온 일본 지식인들에게는 완전히 낭패스런 상황이다. 도대체 어쩌다 한국이 저런 사람을 총리 후보로 내놓을만큼 전락했는가.

말이란 생각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그는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꾸준히 망언을 제조해왔다. 심지어 총리 후보 지명을 전후하여 근무하던 서울대에서 가진 일련의 강연에서도 ‘위안부 문제로 일본의 사과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정부 정책과도 상반되는 발언을 하는가 하면 게이퍼레이드에 대해 ‘나라가 망하려고 그러는 것’이라며 성소수자를 비웃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역사의식도 없고 인권에 대한 존중도 없는, 그냥 평범한 시민으로 살기에도 질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이런 사람을 옹호하기 위해 병풍을 치는 새누리당 의원들 역시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윤상현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문 총리 후보의 교회 망언을 듣고도 ‘언론인이 자유롭게 말한 것을 부정하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의 자유는 총리 후보는커녕 일반인에게도 망언할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인종차별을 한다거나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발언은 사석에서든 공석에서든 범죄가 되고 이런 발언을 한 이는 공직에서 즉시 물러나는 것이 국제사회의 상식이다. 혹시 집권여당 구성원들 대다수가 윤상현 의원 같은 수준으로 사고하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고 전라도를 비하하는 댓글을 쓴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처벌이 아직도 안 이뤄지는 것인가.

안에서 새는 쪽박은 밖에서도 샌다. 빙산은 일각만 드러나지만 그 아래 잠겨있는 90%도 얼음이다. 문창극 총리 후보는 일회성 망발이 아니라 잇따른 실언으로 보이지 않는 90%까지 극우 차별주의자라는 본색을 드러내 보였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이 그를 계속 총리감으로 민다면 이런 속성은 문창극씨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 여당이 물에 담고 있는 90%의 속성임을 온 국민이 확신하게 될 것이다.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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