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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좋은 여행자가 되는 길

입력
2014.06.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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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 여행가

지난 한 달간 카페를 빌려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이들을 위한 여행학교’를 열었다. 내가 여행학교를 꾸린 이유는 두 가지였다. 지속가능한 여행가로 살기 위해 정기적인 학교 운영의 가능성을 시험해 보고, 좋은 여행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적지 않은 참가비를 내고 누가 올까 걱정도 했지만 제법 많은 분들이 찾아왔다. 20대부터 50대까지, 여성이 압도적이었다. 첫 여행지가 몽골이나 요르단처럼 ‘센’ 여행자도 있었고, 고생하는 오지 여행 말고 편한 도시 여행을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고백한 이도 있었다. 우리는 목요일 밤마다 모여 여행과 여행에서 만난 사람을, 여행을 빛내준 음악과 책을, 더 좋은 여행자가 되는 법을 이야기했다.

내가 처음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던 해가 1993년이니 어느덧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여행의 풍속은 많이 달라졌다. 첫 유럽 여행에서 만난 이들은 모두 배낭을 메고, 운동화를 신고, 허리색을 차고 있었다. 지금 유럽에는 트렁크를 끌고, 하이힐이나 구두를 신고, 명품 백을 든 여행자들이 넘친다. 그 시절 여행은 오랜 시간과 큰 돈을 들여 준비해야 하는 어려운 선택이었다. 이제는 TV 홈쇼핑이나 인터넷에서 클릭 한 번으로 쉽게 살 수 있는 상품이 됐다. 한 마디로 여행은 가장 잘 팔리는 소비재가 됐다. 1년에 1,500만명이 출국하니 어디를 가나 한국인 단체 여행자들과 마주친다.

여행을 ‘단순한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자신이 쌓아온 생각의 성을 벗어나는 것’으로 본다면 몰려다니는 여행에서는 그 성을 벗어날 기회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사고의 균열을 불러일으킬 만남 같은 것도 생기기 어렵다.

여행학교가 끝났을 때 함께 했던 이들은 가장 좋았던 시간으로 책임여행에 대해 이야기한 시간을 꼽았다. 책임여행은 아직 우리에게는 낯선 여행의 풍속도다. 여행자에게는 자신이 여행하는 지역의 자연과 경제, 문화적인 환경을 존중하고 보호할 책임이 있다는 개념이다. 지금까지의 여행이 공정하지 않고, 지속가능하지도 않으며, 생태적이거나 윤리적이지도 않았다는 반성에서 1990년대 유럽에서 시작된 여행의 새 흐름이다. 1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누구도 책임여행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여행을 제법 다닌 이들이라면 자신이 괜찮은 여행자인지를 고민한다. 그들은 여행이 ‘어디로’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의 문제이며, ‘소비’가 아니라 ‘만남’이라고 믿는다. 자신이 쓰는 돈이 현지인들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자신이 먹는 음식이 로컬푸드인지를, 자신이 그곳의 문화를 존중하는지 짚어본다. 그들은 유명 관광지를 빠르게 훑으며 사진만 찍고 돌아오는 여행이 아니라 관계를 맺고 교감하는 여행을 꿈꾼다. 그래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패키지 여행을 벗어나 혼자 떠난다.

책임여행자가 되는 길은 귀찮고, 번거롭고, 불편하다. 탄소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히말라야 트레킹에서는 포터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는 여행사인지 꼼꼼히 따져야 하고, 호텔에서는 시트나 타월을 갈지 않아도 된다고 미리 알려줘야 한다. 인사말 같은 현지어도 익히고, 여행하는 지역의 문화나 역사에 대해 미리 공부하는 것은 기본이다. 스타벅스나 맥도날드 같은 다국적 기업의 체인점은 포기해야 한다. 여행 나와서까지 이렇게 해야 해?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가치 있는 일들은 그렇게 귀찮고, 번거롭고, 불편하다. 핵 발전소나 공장형 축산에 반대하는 환경운동도, 장애인이나 성적 소수자를 위한 인권운동도, 더 나아가 민주주의 자체도 그렇다. 세상이 흘러가는 속도나 방향과는 상관 없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이들은 언제나 소수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세상은 그런 사람들 덕분에 느리게나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결국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유도 그런 것이 아닐까. 모두가 편리하고 빠른 것만을 찾는 이 시대에 느리고 불편한 것을 자발적으로 감내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 그래서 우리가 일상을 꾸려갈 이 공간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늘 떠날 수는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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