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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드라마 시청률, 죽여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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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드라마 시청률, 죽여야 산다?

입력
2014.06.12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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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골든크로스' 주인공 네번이나 살인·살인교사 시청률 10% 넘겨 자화자찬 충격적인 장면 경쟁 씁쓸

KBS 2TV 수목극 '골든크로스' 스틸컷
KBS 2TV 수목극 '골든크로스' 스틸컷

“40년간 네 똘마니로 있으니깐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여? 네 구린 구석 내가 다 샅샅이 알고 있다.” “언젠가 내 등에 칼을 꽂을 놈을 40년간 손을 잡고 있었다니…”

KBS 2TV '골든크로스'는 중견 배우 정보석의 연기가 돋보였지만 살인이라는 자극적인 설정 때문에 논란이 됐다. 팬 엔터테인먼트 제공
KBS 2TV '골든크로스'는 중견 배우 정보석의 연기가 돋보였지만 살인이라는 자극적인 설정 때문에 논란이 됐다. 팬 엔터테인먼트 제공

두 사람의 대사 뒤에 어떤 장면이 이어질까. 최근 지상파 3사의 드라마를 빼놓지 않고 본 시청자라면 눈 감고도 맞힐 수 있다. 정답은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자를 해하려는 모습.

11일 KBS 2TV 수목극 ‘골든크로스’의 마지막 장면에서 경제부총리로 내정된 서동하(정보석)가 40년 지기이자 변호사인 박희서(김규철)를 차로 들이받는다. 이유는 박희서가 살인 등 온갖 악행을 저질러온 자신의 비밀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TV 화면은 서동하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박희서를 향해 돌진하고 박희서는 차에 부딪혀 땅바닥에 쓰러지는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사고가 아니라 살해하는 장면을 말이다.

드라마에서 서동하는 네 번이나 살인 또는 살인교사를 한다. 골프채로 20대 내연녀를 죽이고 병상에 누워있던 내연녀의 아버지도 살해한다. 두 사람이 왜 죽었는지 그 이유를 밝히려는 내연녀의 오빠 강도윤(김강우)을 골프채로 죽이려 하고 땅에 묻기까지 한다. 이런 엽기 행각이 걸러지지 않은 채 버젓이 화면을 채운다. 박희서는 서동하의 살인을 두고 “큰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 일쯤은 감수해야 한다”고 두둔한다.

그런데도 ‘골든크로스’는 ‘막장 드라마’ 소리를 듣지 않았다. 출생의 비밀이나 불륜이 중심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듯 ‘골든크로스’는 이날 시청률 10%를 넘겨 지상파 3사 드라마 중 1위를 차지했다는 자화자찬 홍보 자료를 돌렸다. 드라마 속 살인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채 정보석과 김강우의 연기력이 빛났다고 주장했다. 이런 행태가 KBS만의 일은 아니다.

SBS는 아침극 ‘나만의 당신’이 시청률 20%를 돌파했다고 홍보하고 있다. ‘나만의 당신’에는 다른 여자와의 사실혼 관계를 숨기고 재벌가 사위가 된 강성재(송재희)가 사실혼 사실을 아는 이준혁(박형준)을 살해하는 내용이 있다. 강성재는 자신의 범죄를 감추기 위해 납치, 살인미수 등을 자행한다.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살인 장면 정도는 아무렇지 않다는 인식이 방송사에 팽배해 있다는 것을 이들 드라마로 짐작할 수 있다. 한 지상파 방송의 PD는 “최근 드라마가 미국 드라마처럼 장르물을 표방하며 더 자극적인 소재를 찾고 있다”며 “시청자를 붙잡기 위해 아예 첫 장면에서 극단적인 사건(살인)이 일어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비슷한 성격의 드라마에 출연했던 한 연기자는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 등에서 도무지 개연성이 없어 연기하기 곤란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며 “최초의 기획 의도와 달리 시청률에 따라 캐릭터가 바뀌는 일이 부지기수”라고 털어놓았다.

지상파 드라마는 이미 10여년 전에도 비슷한 장면을 내보냈었다. 2003, 2004년 방송된 SBS ‘천국의 계단’과 2004년 방송된 ‘발리에서 생긴 일’은 당시 30% 이상의 시청률로 인기를 모았지만 결말이 충격적이고 선정적이어서 비난을 받았다. ‘천국의 계단’은 태화(신현준)가 안암에 걸린 연인 정서(최지우)를 위해 안구를 기증하고자 자살하고 ‘발리에서 생긴 일’에선 재민(조인성)이 수정(하지원)과 인욱(소지섭)을 총으로 쏜 뒤 목숨을 끊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지상파 드라마의 생명 경시 경향이 10년 이상 계속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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